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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악대사비(동화사)

동화사 〈인악대사비(桐華寺仁嶽大師碑)〉는 은해사와 동화사에서 활동한 인악 의첨(仁岳義沾, 1746~1796) 스님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08년 동화사 내에 건립되었다. 비의 전체 높이는 154cm이며, 너비 62cm, 두께 22cm이다. 비문은 1808년 경상도 관찰사인 김희순(金羲淳)이 글을 짓고, 해서체로 글씨를 썼으며, 아울러 전액도 했다. 각자(刻字)는 미상이다. 〈인악대사비〉는 비의 귀부(龜趺)가 거북 모양이 아닌 봉황 모양으로 조각하여, 동시대의 다른 비와 비교했을 때 특색을 보인다. 현재 〈인악대사비〉는 인악당(仁嶽堂)이라는 비각 안에 안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비의 탁본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탁본한 연대는 1970년대로 추정된다. 비문에 의하면, 인악 의첨 스님의 속성은 이씨(李氏)로, 1746년 9월 9일 대구 인흥촌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에 해박하였다. 18세에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생겨 용연사(龍淵寺)의 가선(嘉善) 헌공(軒公) 스님에게 출가하였으며, 벽봉 화상(碧峰和尙)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스님은 계룡산으로 가서 유명한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교종(敎宗)이 무성해졌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수학하였다. 23세에는 벽봉 화상의 법(法)을 이어받고 설법했다. 또한 2년 후에는 설파 상언(雪坡尚彥, 1707~1791) 스님께 선의(禪衣)를 전수받아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서산 휴정(西山休靜, 1520~1620), 상봉 정원(霜峰淨源, 1627~1709)의 법맥을 잇게 되었다. 이후 영남과 호남의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교화를 행하였는데, 특히 팔공산에서의 행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스님은 1790년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크게 중창한 수원 용주사(龍珠寺)에서 불사를 감독하는 증사(證師)가 되었을 뿐 아니라 「불장복문(佛藏腹文)」을 지어 정조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1726년 병을 얻어 포산(苞山)의 명적암(明寂庵)에서 세수 51세, 법랍 34세로 입적하였다. 〈인악대사비〉는 『인악집』에 수록된 「인악대사 행장」과 더불어 스님의 구체적인 행적을 설명하고 있는 자료이다. 비문에는 스님이 팔공산을 비롯하여 영남과 호남의 여러 산들을 돌아다니며 교화를 행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찰에서 주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다만 스님의 비가 동화사에 세워진 점이나, 스님의 저술을 모아 간행한 『인악집』에서 은해사 및 은해사의 암자들과 관련한 다수의 기문이 확인되는 점을 통해 보았을 때, 인악 의첨 스님은 은해사 및 동화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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