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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월당 대선사 진영

팔공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행장에 관해서는 스님의 유고집인 『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集)』에 남아있다. 스님은 서산 휴정 스님의 후손으로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의 4세손이자 관월 경수(冠月景修,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활동) 스님의 제자이다. 〈양종정사 도봉당 대사 유문탑비(兩宗正事道峯堂大師有聞塔碑)〉(1800)에서는 도봉 유문(道峯有聞, ?~1800) 스님의 제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징월 정훈 스님은 불문의 사표로 존경을 받았으며, 뛰어난 시로 불교뿐만 아니라 사대부 사이에서도 뛰어난 승려로 꼽혔다. 이를 입증하듯 은해사 백흥암의 「순영제음(巡營題音)」(1798)을 비롯하여 5개의 기문(記文)을 썼으며, 1822년 수도사 〈괘불도〉(1704)을 중수할 때 증명(證明)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폐사된 수도사를 중창하고, 동화사, 은해사, 지장사, 압곡사 등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을 중흥하는 데 힘을 더했다. 스님이 은해사 운부암에서 입적하자 스님의 진영은 은해사 운부암과 수도사에 모셔졌다.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 중인 스님의 진영은 세로 129.0cm, 가로 80.0cm이다. 배경은 벽면과 바닥면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녹색으로 채색된 벽면은 칠보문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바닥면에는 문양이 있는 화문석을 표현하였다. 화면의 왼쪽 상단에는 ‘양종정사 징월당 대선사지진영(兩宗正事澄月堂大禪師之眞影)’이라는 제명(題名)이 있고,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는 희곡 산인(希谷㪚人)이 쓴 영찬(影讚)이 기록되어 있다. 희곡 산인은 1820년 금강산 유람길에 교유했던 희곡 이지연(李止淵, 1777~1841)이다. 진영 속 스님은 가부좌를 하고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앉아 있으며 적색 가사와 갈색 장삼을 입고 손에는 주장자와 염주를 들고 있다. 진영의 뒷면에는 ‘계미삼월일봉안(癸未三月日奉安)’이라는 묵서가 있다. 이 기록은 스님이 운부암에서 입적하자 제자들이 진영을 제작했다는 시점과 일치하므로 이 진영의 제작 시기를 182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원문
影讚 澄江皓月 我本圓寂 是謂法身 即假而眞 希谷㪚人題
번역문
영찬 맑은 강의 밝은 달 이것이 법신이로다 내 본래 원적하니 현상이 곧 참 세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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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월당 대선사 진영(은해사성보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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