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해암 홍린(海庵洪璘) 스님의 진영이다. 해암 홍린 스님은 부휴문중의 일원으로 서악 도태(西岳道泰) 스님의 4세손이자 백흥암의 명강사였던 자암 봉초(紫岩奉璴) 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님에 대한 기록은 1810년 「백흥암 중흥유공기(百興菴重興有功記)」, 1829년 「은해사 거조암 대법당중수기(銀海寺居祖庵大法堂重修記)」 등 은해사와 백흥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흥암의 주지 인악 의첨(仁岳義沾, 1746~1796) 스님의 제자인 제월 성안(霽月聖崖) 스님에게 「백흥암 중흥유공기」의 글을 부탁했으며 은해사 종사이자 무자갑계의 일원이었다. 또한 『오대산중대불량문(五臺山中臺佛糧文)』(1814)에서는 아버지 유주환과 어머니 천씨의 영가를 빌었다.
〈해암당 대선사 진영〉은 크기는 세로 119.0cm, 가로 80.0cm로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배경은 벽면과 바닥면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녹색으로 채색된 벽면은 칠보문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바닥면에는 문양이 있는 화문석이 깔려 있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묵서로 ‘양종정사 해암당 대선사지진영(兩宗正事海庵堂大禪師之眞影)’이라고 적힌 제명(題名)이 있으며, 화면의 오른쪽 상단의 영찬(影讚) 부분에는 기록 없이 공간만 구획되어 있다. 그림 속 홍린 스님은 가부좌를 하고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앉아 있으며 사천왕첩이 표현된 적색의 가사와 푸른색 장삼을 입고 손에는 주장자와 염주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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