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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 지연과 은해사

자운 지연(慈雲志演, 생몰년 미상) 스님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화승(畵僧)이다. 스님의 법명은 각종 문헌 기록이나 화기(畫記)에서 ‘持演’, ‘持涓’, ‘智涓’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스님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님은 1778년 은해사 백련암의 〈지장시왕도〉 제작에 보조 화승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822년 수도사 〈괘불화〉 제작에 화사(畵師)로 참여하기까지 약 40여년 간 은해사를 비롯하여 통도사, 기림사, 석남사 등 경상도 지역의 사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음이 확인된다. 자운 지연 스님의 첫 활동이 은해사에서부터 확인되는 만큼, 스님은 은해사와 긴밀한 관계를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스님은 앞서 언급한 1778년 은해사 백련암 〈지장시왕도〉 제작부터 1786년 거조암 〈백선묘석가설법도〉, 1792년 은해사 백흥암 〈감로왕도〉를 제작하는 등 은해사에서의 활발한 불사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스님이 1792년부터 1798년까지 통도사로 초빙되어 이곳에서 집중적인 불사를 진행하였다는 점을 볼 때, 스님은 1792년까지 은해사에 계속해서 주석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후에도 스님은 1798년 은해사 법당 단청, 1800년 은해사 〈신중도〉 제작 그리고 1804년 영파 성규(影坡聖奎, 1728~1812) 스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석조 나한상 보수 불사에 참여하는 등 은해사와의 각별한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인악 의첨(仁嶽 義添, 1746-1793) 스님이 찬한 은해사 백흥암의 「백흥암 영산전 소성불보살급나한제상기(百興庵靈山殿塑成佛菩薩及羅漢諸像記)」(1786) 현판문에 ‘화사 지연(畫師指演)’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천군 은해사 사적(永川郡銀海寺事蹟)』(1798)에 따르면 자운 지연 스님은 1789년경 단독으로 보문굴(普聞窟)을 창건한 뒤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또한 스님의 백일기도 이후 염불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가며 안거하였다고 전하고 있어, 스님이 보문굴을 염불 수행의 거처로서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이 쓴 「백흥암 극락전 단확 공덕기(百興庵極樂殿丹雘功德記)」(1818) 현판문의 연화질에는 양공 퇴은 신겸(退隱信謙) 스님 뒤에 선덕 지연(禪德指涓) 스님의 이름이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詩集)』(1832)에 수록된 「미타암중수기(彌陀庵重修記)」에 따르면, 1794년 지연 장로(指演長老, 생몰년 미상) 곧 자운 지연 스님이 은해사 미타암을 수리한 뒤 거처하였으며 또한 1816년에는 미타암을 수개월에 걸쳐 무너진 법당과 요사채를 수리했다고 전한다. 스님은 은해사 미타암을 중수하여 이곳을 자신의 수행처로 삼아 노년을 보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자운 지연 스님은 은해사에서 화승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수행자로서의 모습 역시 보였음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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