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와 동화사에 주석하셨던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의 진영이다. 기성 쾌선 스님의 생애는 대구 동화사의 〈기성당대사탑비〉(1764)와 칠곡 송림사의 〈기성대사비〉(1772) 및 『상봉문보(霜峰文譜)』(1922)에 수록되어 있다. 스님의 속성은 류(柳)씨이며,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났다. 팔공산의 정기를 밝게 한다고 칭송을 받을 정도로 팔공산과 인근 사찰에서 수행 정진하였다. 13세에 송림사에서 출가하였으며, 낙빈 홍제(落濱弘濟) 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님은 1740년 동료 30여 명과 은해사 위쪽 계곡에 절을 짓고 염불 수행을 하였으며 1743년에는 동화사 인근에서 『화엄경』 80권을 읽고 밤에는 좌선 수행에 진력하였다. 말년에는 은해사 기기암에서 염불 왕생을 권하는 결사 활동을 하였다.
스님이 입적하자 제자들은 동화사의 상봉 스님 승탑 아래에 기성 스님의 승탑을 세우고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 〈염불환향곡(念佛還鄕曲)〉을 간행하였으며, 송림사에 스님의 비를 세우고 진영을 제작하는 등 추모 사업을 이어갔다.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스님의 진영은 크기는 세로 157.0cm, 가로 96.5cm이며 화면 왼쪽 상단에는 묵서로 ‘기성당대선사진영(箕城堂大禪師眞影)’이라고 적힌 제명(題名)이 있다. 스님은 가부좌를 하고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앉아 있으며 가사와 장삼을 입고 손에는 주장자와 염주를 쥐고 있다. 스님의 왼쪽 서안(書案)에는 『화엄경』이 올려져 있는데 『화엄경』을 중시하였던 스님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진영 속의 스님은 행장에 기록된 ‘정수리가 넓고 코가 곧으며 얼굴은 검고 눈이 빛났다(頂濶準直面黧目瑩)’라고 표현된 스님의 형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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