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기성대사비(송림사)

1772년에 건립된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의 비이다. 〈기성대사비〉는 현재 칠곡군 송림사(松林寺)에 있다. 비의 전체 크기는 240cm, 비신 높이 197cm, 너비 73cm 두께 32.5cm이며, 서체는 해서(楷書)이다. 기성 쾌성 스님이 1764년 입적하자 스님의 제자인 혜징(慧澄) 스님의 요청으로 홍문관 부제학 이미(李瀰)가 비문을 찬술하였고, 윤동섬(尹東暹)이 글씨를 써서 1772년 비를 세웠다. 이 비는 크게 비문을 찬술하게 된 연유, 기성 쾌선 스님의 출행, 출가, 팔공산에서의 수행, 명문, 비석 건립에 공헌한 대시주(大施主) 명단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에 따르면, 기성 쾌선 스님은 13세에 팔공산 송림사(松林寺)에 들어간 후 14세에 민식 대사(敏湜大師) 스님의 문하로 들어갔으며, 16세에 서귀 대사(西歸大師)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스님은 25세에 낙빈 홍제(落賓弘濟) 스님에게 수학 한 뒤 팔공산에서 『화엄경』 공부와 좌선 수행에 매진하였다. 1760년 스님은 68세의 나이에 은해사 기기암(奇奇庵)에서 3년간 결사를 행한 뒤 1764년 세수 72세 승랍 59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스님은 일생에 걸쳐 동화사나 은해사 등 주로 팔공산을 중심으로 수행과 불사를 이어 나갔으며, 당시 사람들에게 팔공산의 정기를 맑게 한다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기성 쾌선 스님은 1729년 은해사 극락전 목조아미타불좌상의 중수, 1755년 은해사 〈삼장보살도〉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은해사에서 활발한 중창 불사에 참여하였다. 또한 〈기성대사비〉나 「기성대사 행장」에서는 스님이 1760년 은해사 기기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아울러 1943년에 건립된 〈은해사 사적비(銀海寺事蹟碑)〉에 의하면, 기기암이란 이름은 기성 쾌선 스님이 정토발원을 하면서 ‘몸은 사바세계에 깃들되(身寄娑婆) 마음은 극락정토에 깃든다(心寄極樂)’는 뜻을 담아낸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스님의 진영은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련기사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