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당대사탑비〉는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이 입적하자 스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64년 동화사에 세운 탑비이다. 비신의 높이는 122.7cm, 너비 46cm 두께 15cm이며, 서체는 해서(楷書)이다. 탑비의 찬자, 각자, 서자는 미상이며, 현재 대구 동화사(桐華寺)의 기성 쾌선 스님의 부도 앞에 위치하고 있다.
〈기성당대사탑비〉의 비신 전면 중앙에는 “기성당대사지탑(箕城堂大師之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신 후면 중앙에는 “숭정기원후삼갑신랍월일립(崇禎紀元後三甲申臘月日立)”이라는 글씨가 있어 이 비가 1764년에 세워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비신 후면 하단에는 “도감(都監) ■■■”, “승통(僧綂) 해연(海演)”, “별좌(別坐) 취헌(就軒)”이라는 인명이 확인되고 있어 이 비의 건립에 참여한 인물들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기성당대사탑비〉의 실물 사진과 판독문 해석문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가유산지식이음 금석문 검색 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 비의 주인공인 기성 쾌선 스님의 자세한 행적은 1772년 칠곡군 송림사(松林寺)에 건립된 〈기성대사비〉의 내용과 회응 석주의 『상봉문보』(1922)에 수록된 「기성쾌선선사 행장」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스님은 주로 팔공산의 사찰들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특히 1729년 은해사 극락전 목조아미타불좌상의 중수, 1755년 은해사 〈삼장보살도〉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은해사에서 활발한 중창 불사에 참여하였다. 또한 〈기성대사비〉나 「기성쾌선선사 행장」에서는 스님이 1760년 은해사 기기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아울러 1943년에 건립된 〈은해사 사적비(銀海寺事蹟碑)〉에 의하면 기기암이란 이름은 기성 쾌선 스님이 정토발원을 하면서 ‘몸은 사바세계에 깃들되(身寄娑婆) 마음은 극락정토에 깃든다(心寄極樂)’는 뜻을 담아낸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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