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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악집-은해사 무오갑수공비

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 스님의 문집 『인악집(仁嶽集)』 권2에 〈은해사 무오갑수공비(銀海寺戊午甲樹功碑)〉(1787)가 수록되어 있다. ‘무오갑’이란 ‘무오생 동갑계’의 줄임말이다. 즉 무오년에 태어난 이들이 맺은 계모임을 뜻한다. 조선 후기에는 사찰 운영을 위한 계(契)가 활성화되었으니, 그 실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수공비’란 공훈을 적은 비를 세웠다는 뜻이다. 인악 대사는 이미 「무오갑헌토기(戊午甲獻土記)」라고 하여 무오생 갑계에서 땅을 바친 일에 대한 기문을 지은 바 있는데, 은해사 주지 체주(體周) 스님이 기문(記文)에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하여 그 공로를 드날려야 한다고 해서 공훈을 기록하여 비를 세운다고 했다. 무오갑계 인원은 90명이 넘고 여기서 바친 땅이 거의 백을 헤아린다고 했다. 단위는 기재되지 않았는데 조선 후기 토지 매매에 사용된 단위로는 파종을 기준으로 설정한 마지기(斗落只, 1말의 씨앗이 떨어지는 면적으로 대략 200평), 수확량을 기준으로 설정한 부(負)가 있다. 수확할 때 한 줌씩 베어서 놓은 것을 1파(把)라 하고, 10파가 한 다발(束), 10속이 1짐(負), 100부가 1결(結)이 된다.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로 낮게 쌓은 둑이나 언덕인 두렁으로 구분된 배미[夜味]도 있다. 수공비에 적힌 단위가 마지기라면 대략 2천 평이나 되니, 공적을 기릴 만하다.
원문
銀海寺戊午甲樹功碑 余旣撰戊午甲獻土記。而前住持體周進曰。戊午之所獻土。殆以百計。何功之偉也。此已煩吾師揭板。而其後又買某氏園林之在法堂東北隅者。以施之。其方數里。與本林合。蔚然有祗陀之風。其他樓偹雲板。寺補雜用者。又可百緡錢。不旣多乎。甲凡九十餘人。而如巨演大演宥瑛敎敏等。特其功多者也。爲之倡導而拮据。種種補苴。有如是乎。是則誌文所不及者。與前獻土功。並宜刻之豊珉。以勸夫後之諸甲。余曰。然。至難回者勢也。此勢一回。雖饕餮可化。後進諸甲。必多感發而興起者矣。爾寺其庶幾乎。銘曰。二人之利。猶能斷金。於寺何有。九十同心。
번역문
은해사 무오갑 수공비 나는 이미 무오갑계가 땅을 바친 기록을 지었는데 전 주지 체주가 나와 말하였다. “무오가 바친 땅은 거의 백으로써 헤아리니 어찌 그리 공이 큰지요. 이것은 이미 우리 스님을 번거롭게 해서 판을 달았습니다. 그 뒤에 또 법당 동북쪽 모퉁이에 있는 아무개의 원림을 사서 보시했습니다. 그것은 사방으로 몇 리나 되는데 본사의 숲과 합하여 울창한 게 기원정사의 풍모가 있었습니다. 그 나머지 누각에 운판을 갖추고 절 보수의 잡비에 쓸 것이 또 백 꿰미의 돈이 되니 이미 많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갑계는 모두 90명이 넘지만 거연·대연·유영·교민 등 같은 이는 특히 그 공이 큽니다. 그 일의 창도가 되어 애썼으며 갖가지를 도왔습니다. 이와 같음이 있겠습니까? 이러하니 기문에 언급하지 않은 이들과 앞의 땅을 바친 공과 아울러 큰 옥돌에다 새겨 뒤의 모든 갑계를 권면해야만 합니다.” 나는 말하였다. “그러하다. 돌아오기 지극히 어려운 것은 세이다. 이 세가 한 번 돌아오면 비록 도철이라 할지라도 교화할 수 있다. 뒤에 오는 모든 갑계는 반드시 감동해 분발하여 흥기할 것이다. 너희 절이 아마 거기에 가까울 것이다.” 명(銘)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조차 끊을 수 있거늘. 절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아흔 명이 마음을 함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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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악집 02(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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