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순조 10) 3월에 제월 성안(濟月聖岸) 스님이 쓴 〈백흥암 중흥유공기 현판문〉이다. 당시 주지인 해암 선사(海巖禪師)가 절의 중건에 큰 공을 세운 설화(雪華), 자암(紫巖), 도봉(道峰) 등 대선사(大禪師)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안에게 글을 청하여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두 시대의 이름난 강사[名講]로서 잇달아 절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쓰며 각종 불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설화 종백(雪華宗伯) 스님은 1772(영조 48)년에 이 절에 왔는데, 당시 10여 명의 승도는 하루의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다. 설화 스님은 먼저 도량을 정비하고 폐옥(幣屋)을 보수하였으며 절의 동편에 계단을 조성하였다. 또한 여러 동지를 모아 모임을 만들고 많은 염장(塩醫)을 준비하여 장래에 대비하였다. 설화 스님의 뒤를 이어 자암 스님이 머물며 불사를 이어 나갔다. 이후 도봉 화상(道峰和尙)이 머물며 시주를 모집하여 영산전의 석가상과 나한상을 새로 조성하고, 다른 제성상(諸聖像)을 채색(彩色)하였다. 또한 명부전의 불상도 새롭게 채색하고, 영산전과 명부전에 재향(齋享)하는 등촉(燈燭)과 향화(香火)의 공양물을 확충하여 공양소(供養所)를 설치하였다. 이어 죽옥(竹屋)을 매입하여 각전(各殿)의 누수를 방지하였고, 조사각(祖師閣)을 신축하여 선인(先人)의 음덕을 기렸다. 도봉 화상은 신도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며 절약하며 검소하게 재물을 쓰도록 인도하기도 하였다. 이후 찾아오는 이가 날로 늘어나 절의 재정도 증가하게 되었느니, 백흥암이라는 이름이 곧 도봉화상을 미리 예정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이 현판은 백흥암 보화루에 걸려있다.
원문
百興菴重興有功記
雪華道峰紫巖三大禪師皆一代之名講主相繼宅本菴各有不可諼之事業此今日之所以記其績而欲壽美者歟盖庵也以古寺新華之餘凡百艱難類同草刱者不滿十數之從無終日之計雪華宗伯以乾隆壬辰執錫而來汛掃道場勞來同志奄然成會而多備鹽醬爲後饒隨補敞廬以匡其危樓之東無砌築而完之佛前內外亦多有力焉而酬人請去之之後紫巖講老接其武而鍍佛之事治菴諾節前所未及者盖張大之而亦赴人請則道峰和尚揮塵而入募檀信造釋迦像與阿羅漢二躯以補靈山殿之闕其餘尊者皆粉而色之且於冥府殿請聖亦皆重彩焉而仍備香火資別設奉供所爲兩殿千秋之亭市外屋防各殿渗漏之患備講鍾爲說法時威儀之助設祖師閣報前修備垂蔭之德敎從以禮讓用財以節儉自是來者日踏財稍稍阜矣可謂百敞俱興菴號曰百興其待和尚而預稱之乎余因本菴主人海巖師請書之于雲浮室中己師又曰如上請功成可無優劣乎余對曰一則有草刱之難二則有張大之盖三則有大備之功語其跡則雖有些少浅深其難則無二也子歸試語大衆大衆聞之不易吾言矣
嘉慶十五庚午三月日霽月聖崖謹識
主菴海巖洪璘
都監惣彦
立繩巨旭
三寶任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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