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7월 석하거사(石下居士) 박원묵(朴元黙, 1834~1911)이 짓고, 진사 홍재욱(洪在郁)이 쓴 〈보화루 중건기 현판문〉이다. 박원묵의 자는 성용(性容), 호는 석하(石下)이다. 밀양 삼랑진 출신으로 문장이 뛰어나 많은 글을 남겼다. 그의 문집 『석하선생문집(石下先生文集)』에도 이 중건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지 은악 경상(銀岳璟祥, 『석하선생문집』에는 ‘銀岳海鏡’으로 기록됨) 스님이 쇠락한 누각의 중건을 발원하고 마침 대시주 이명천(李命天)의 도움으로 불사를 시작하였다. 산내 여러 암자의 도움으로 5개월 만에 중건을 모두 마쳤다. 불사의 도감은 은악 경상, 별좌(別座)는 환응 도희(喚應度喜), 화주는 운파 경화(雲坡慶華), 공사(供司)는 도언(道彦), 도편수는 박응팔(朴應八)과 박화백(朴和伯) 등이었다. 당시 암자의 조실은 용희 일상(龍羲一詳), 삼강승통(三綱僧統)은 남화 영윤(南化永允), 서기는 봉기(奉基), 수승(首僧)은 기현(琪賢), 지전(持殿)은 해성 한규(海惺漢奎), 구산 보옥(龜山普玉) 등이었다. 암자의 대중과 불사 참여자는 승도 33인, 속인 4인, 합 37인으로 당시 암자의 규모를 알 수 있다. 말미에는 전체 중수 비용을 금전과 미곡으로 나누어 적어 놓았다.
원문
雲浮庵寶華樓重建記
……(省略)……
光武四年庚子七月十五日 石下居士 朴元黙 記
進土 洪在郁 書
河弼斗 鑄
本菴秩
祖室 龍義一詳
別堂 喚應度喜 友霞輔玹 雲坡慶華 銀岳璟祥 會曇在訓
持殿 海性漢奎 龜山普玉 海鏡斗士 滿洙 祥修 普律 景誼
立繩 謹政 應晥 尙昕 尙昈 敬天 性寬 海珍
典座 普雨 道善 敬雲 道彦
童子 俊天 奉珍
負木 徐東春
緣化秩
都監 銀岳璟祥
別座 喚應度喜
化主 雲坡慶華
供司 道彦
都片手 朴應八
朴和伯
大施主 李命天
書記 奉基
三綱僧統 南化永允
首僧 琪賢
所八錢文二千八十七兩五戔米三百十五斗五升
관련기사
-
징월대사시집-미타암 중수기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詩集)』은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의 문집이다. 징월 대사의 자는 경호(敬昊), 속성은 김(金)으로, 관월(冠月)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시에 뛰어나 당시 사대부들이 영남의 명승으로 높이 칭찬하였다. 은해사 운부사(雲浮社, 운부암)에서 세수 73세로 입적하였다. 「미타암 중수기(彌陀菴重修記)」는 『징월대사시집』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처음에 “팔공산은 영남의 명승지요, 은해사는 영천군의 명찰이다. 팔공산 한 지맥이 멀리서 뻗어 와 그윽한 곳에서 열리니 미타암이 있는 곳이다.”라는 문... -
조선사찰사료-운부암『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1911)에는 1862년의 백흥암의 중수 사실을 기록한 「운부암(雲浮菴)」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백흥암 주관(主管) 일봉(一峯) 스님이 작성했으며, 암자의 중수 사실 외에도 원통전, 보화루, 운부난야, 우의당 등 암자에 딸린 전각 현황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중수 기문 및 보화루 중건기의 자료가 있다고 적었다. 한편, 운부암 연혁을 기록한 자료 중에는 「운부암 중건기(雲浮庵重建記)」와 「운부암 보화루 중건기(雲浮庵寶華樓重建記)」가 확인된다. 1862년 혼허 지조(渾虛智照, 생몰년 미상) 스님이... -
운부암의 역사와 가람 배치 -
운부암 보화루 현판운부암 보화루에는 〈보화루(寶華樓)〉 편액을 비롯해 「운부암 중건기(雲浮庵重建記)」, 「운부암 보화루 중건기(雲浮庵寶華樓重建記」, 「팔공산 운부암 중수기(八公山雲浮庵重修記)」, 「운부암 관음성상 개금기문(雲浮庵觀音聖像改金記文)」, 「운부암 중수 시주방명록(雲浮庵重修施主芳名錄)」, 「팔공산 은해사 산내 운부암 관세음보살상 개금불사 시주방함록(八公山銀海寺山內雲浮庵觀世音菩薩像改金佛事施主芳銜錄」, 「불사연화·성조연화·본암(佛事緣化·成造緣化·本庵)」 등 운부암의 크고 작은 불사를 기록한 현판이 여러 점 걸려 있어, 운부암의 역사를 이해...
더보기 +
불교용어
관련자료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