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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금강문 상량문

금강문(金剛門)은 일주문에서 90m정도 울창한 숲길을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수덕사의 네 번째 문이다. 금강문이 세워진 곳은 본래 1962년 벽초(碧超鏡禪, 1899~1986) 스님이 일주문을 세웠던 자리이다. 1998년 법장(仁谷法長, 1941~2005) 스님이 중창불사를 일으켜 사하촌을 정비하면서 일주문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짓고, 2000년에 일주문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금강문을 새로 세웠다. 2002년 발간된 『수덕사 중수기』에 금강문의 기둥을 세우며 쓴 상량문[金剛門上梁文]과 신축 공사를 마치고 쓴 「금강문 준공문(金剛門竣工文)」이 수록되어 있다. 「금강문 상량문 」에는 1400년 간 고승들을 배출해 온 수덕사를 찬미하고, 국보인 대웅전과 능인선원, 조인정사의 당당한 모습을 칭탄하였다. 그리고 가람의 규모를 중창한 법장 스님의 노력과 그 결과를 설명하고, 금강문의 설립과 그 의미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상량송과 참여 인원의 명단을 아울러 기록하였다.
원문
金剛門 上梁文 車嶺의 地穴과 地脈이 湖西로 흘러 世界 最高의 名堂으로 지칭되어온 德崇山은 옛부터 小金剛이라 일컬어 왔고 道詵決錄에는 三聖八賢이 出現한다고 述하고 있으니 1400餘年의 찬연한 歷史와 高僧碩德을 輩出하였음은 周知의 事實일 것이다. 바로 佛祖의 慧燈이 꺼져가던 시절 慧明처럼 나타나 禪風을 振作한 鏡虛禪師와 그 禪脈을 계승 近代 韓國佛敎를 中興시킨 滿空禪師의 道場 修德寺는 本來 面統를 유감없이 지켜왔으며 國寶 49호인 大雄殿은 700餘年이나 原形 그대로 保存되어 오고 있으며, 能仁禪院과 祖印精舍는 그 家風을 모습으로 堂堂하게도 지키고 있다. 그러나 伽藍이 微微함에도 德崇叢林으로 지정에 이르렀음은 결코 偶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圓潭 方丈 大宗師께서는 佛祖의 慧恩을 이어가는 家風과는 걸맞지 않게 伽藍 規模가 寺格에는 미치지 못함을 노심하던바 그 뜻을 받들어 住持 法長이 願力을 發하여 옛 百濟伽藍 再配置 綜合計劃을 時點으로 黃河精樓와 天王門을 세우고 오늘의 金剛門을 上梁에 이르렀나니라. 이는 山門入口에서부터 入此門內 莫存知解할 것이며 金剛天龍八部擁護로 修行者는 證得하고 看經者는 開慧眼하며 祈禱者는 所願成就하고 萬民이 無障 無하여 未來에 祖度家風을 다시 振作하기를 發願하며 이 門을 세우도다. 또한 以此 因緣功德으로 此寺 創建以來 有主 無主 孤魂까지라도 離苦得樂하기를 心祝하는 바이다. 모쪼록 四部大衆의 發願이 헛되지 않아 韓國佛敎의 宗風을 世界속에 꽃피우는 道場이 될 것을 빌어 立柱上梁하는 바이다. 佛紀 2543年 己卯 陰 三月 初하루 戊戌巳時 上梁 禪之宗刹 德崇叢林 修德寺 方丈 眞性 圓潭 偈頌 天王帝釋同時出 西來家風不動揚 來時寂寂去時亦 本無一物無言說 證明 方丈 圓潭 西堂 應潭 首座 雪靖 維那 愚松 住持 仁谷 法長 總務局長 只耘 敎務局長 宙耕 財務局長 正默 布敎局長 徑學 社會局長 珍碩 事務長 李奎粲 事務次長 郭鎬一 立繩 法眼 閑主 法賢, 法光 秉法 法龍, 仁行, 應觀, 應傳 院主 曉精 講師 巨芙 持殿 法住 供司 菜供菩薩 片手 田興秀 外 大衆一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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