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제7책 목차 일부
간략 서지 사항
이하에서 소개하는 휴정의 전서 10종 가운데 내용 구성이나 체제 측면에서 『삼가귀감』이 간행 연대가 가장 빠른 문헌이라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휴정의 행적과 함께 유추하면 선교양종판사직에서 물러나 지리산 내은적암에 머물면서 이 문헌을 편찬하고 쌍계사 부속 암자인 능인암으로 옮겨와 간행하였을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 43세 경인 1562년 전후의 일일 것이다. 이본으로는 1564년 직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삼교귀감(三敎龜鑑)』(『삼가귀감이본』)을 들 수 있는데 1564년에 휴정이 쓴 서문이 실려 있으며, 1569년에 의천(義天)이 언해하여 묘향산의 보현사에서 개간(開刊)한 『삼가귀감』 언해본과 의천의 교정을 거쳐 유정(惟政)의 발문을 수록하여 1579년에 지리산 신흥사(新興寺)에서 간행한 『선가귀감』 등 3종을 꼽을 수 있다.
다음으로 현존 문헌에서 발행년을 확인할 수 있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휴정 입적 전인 1586년에 발행된 『선교석』, 해인사(海印寺)에서 1605년에 발행한 『운수단가사』, 송광사(松廣寺)에서 1608년에 발행한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말미에 합본되어 실린 『선교결』, 허균의 서문이 실려 있는 1612년 발행의 『청허당집』, 용복사(龍腹寺)에서 1634년에 발행한 『설선의』, 안심사(安心寺)에서 1664년에 발행한 『달마대사관심론(達磨大師觀心論)』에 합본되어 실린 『삼로행적』과 『심법요초』 순이다.
10종의 전서 가운데 『삼가귀감』, 『삼가귀감이본』은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도교를 포용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글이며, 『선가귀감』, 『선교석』, 『선교결』, 『심법요초』, 『청허당집』 등에는 휴정의 선관(禪觀)이 잘 드러나 있고, 『운수단가사』와 『설선의』는 의례집에 속하며, 『삼로행적』은 휴정의 조부에 해당하는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 부친 격인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 사숙이라 할 수 있는 경성 일선(敬聖一禪, 1488~1568)의 행장을 각각 두류산(頭流山), 풍악산(楓嶽山), 묘향산(妙香山)에서 지어 수록한 문헌이다.
| 한국불교전서 제7책 수록 10종 문헌의 목록 | ||||
|---|---|---|---|---|
| 일련번호 | 문헌번호 | 문헌명 | 분량 | |
| 1 | H0136 | 삼가귀감(三家龜鑑) | 28단 | |
| 2 | H0137 | 삼가귀감이본(三家龜鑑異本) | 28단 | |
| 3 | H0138 | 선가귀감(禪家龜鑑) | 39단 | |
| 4 | H0139 | 심법요초(心法要抄) | 20단 | |
| 5 | H0140 | 선교석(禪敎釋) | 9단 | |
| 6 | H0141 | 선교결(禪敎訣) | 4단 | |
| 7 | H0142 | 청허당집(淸虛堂集) | 236단 | |
| 8 | H0143 | 설선의(說禪儀) | 19단 | |
| 9 | H0144 | 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 | 26단 | |
| 10 | H0145 | 삼로행적(三老行蹟) | 20단 | |
| 429단 | ||||
신흥사(新興寺) 1579년 발행 선가귀감ⓒ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송광사(松廣寺) 1610년 발행 선가귀감언해ⓒ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선교관(禪敎觀)
휴정의 선교관을 엿볼 수 있는 저서로는 『선가귀감 』, 『선교석 』, 『선교결 』, 『심법요초 』 그리고 시문집 『청허당집 』 등을 꼽을 수 있다.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전형을 보여 준 중국 당나라 때의 인물 규봉종밀(圭峰宗密)에 비견될 만큼 휴정 역시 선과 교가 다르지 않다는 관점을 펼친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한다.
그 근거로 드는 대표적 글귀는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이고, 전 생애에 걸쳐 설하신 일체의 가르침은 교문(敎門)이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선과 교가 각각 갈라지게 된 것은 가섭과 아난에게서부터이다. 말이 없는 경계에서 말이 없는 경계에 이르는 것이 선이요, 말이 있는 경계에서 말이 없는 경계에 이르는 것이 교이니, 마음은 선법(禪法)이요 말은 교법(敎法)이다. 법은 비록 한맛이지만 견해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이것이 선과 교가 두 갈래 길로 갈라진 이유이다.”
선교일치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이 둘을 상보적 관계로 보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위의 휴정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과 교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그 차이점을 뚜렷이 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술하는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선교일치와 방불한 논의를 펼치는 대목마다 교학에 대한 선지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밝히려는 의도에서 비교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휴정은 이렇게 말한다. “선(禪)이나 교(敎)나 일념(一念)에서 일어난다. 심의식으로 미치는 경계는 사량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니 교이며, 심의식으로 미치지 못하는 경계는 참구(叅究)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니 선이다.” 수연(隨緣)과 불변(不變), 성상(性相)과 체용(體用),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전수(全收)와 전간(全揀), 원융(圓融)과 항포(行布) 등이 자재하여 서로 걸림이 없으며 본래부터 이들 모두가 동일한 시간에 존재하고 앞뒤의 차별도 없는 것이 선(禪)인 반면, 수행과 증득에 계급과 차제(次第)라는 선후가 있는 것이 바로 교(敎)라는 말이다.
“모든 부처님은 활등처럼 설하였고, 모든 조사는 활시위처럼 설하였다. 교가(敎家)에서 말하는 ‘장애가 없는 법(無碍之法)’은 곧바로 일미(一味)로 귀결되고, 이 일미라는 자취마저도 쓸어 없애면 곧바로 선가(禪家)의 일심(一心)이 드러난다. …… 화엄종에서는 비록 한계가 없는 법계를 밝히고 인과의 영역에 눌러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증득하려는 자는 반드시 견문생(見聞生)과 해행생(解行生)을 거친 다음에야 증입(證入)한다. 그러므로 이치로 통하는 길[義路]의 함정[窠臼]을 아직 뚫고 나가지 못했고 또한 십종병(十種病)의 근원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니, 어찌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旨)와 비교하겠는가?”라는 글 속에서 선과 교의 차이점에 대한 휴정의 분명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화두를 들어서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는 핵심적 요지를 담고 있는 『심법요초 』에서도 교학에 대한 비판을 뚜렷이 하고 있는데, 「교학자병(敎學者病)」, 「삼승학인병(三乘學人病)」, 「교가오십오위(敎家五十五位)」 등이 그러하다. 선과 교를 판별하여 그 차이를 분명하게 해석한 『선교석 』에서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경전을 읽어도 상관없지만, 경전은 어떤 것이 되었건 모두 특수한 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문의 종지로 삼을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선과 교의 쓸모없는 논쟁을 불식하는 데 주안점을 둔 『선교결 』에서는 교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선적인 요소는 선가의 입문 초구(初句)에 해당할 뿐이며, 부처님이 설한 일대교(一代敎)도 삼승(三乘) 방편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로써 휴정은 선에 토대를 두고 교학을 부대적으로 끌어들여 비교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발행지 발행년 미상의 심법요초ⓒ규장각
조사선(祖師禪)과 간화선(看話禪)에 입각한 수행론
선가에서 대대로 전해져 온 ‘귀감(龜鑑)’이 되는 구절들을 모아 일정한 안목을 가지고 평석을 가한 『선가귀감』 또한 흔히 생각하듯 선교일치의 관점은 아니며, 선가의 관점에서 교가의 여러 설들을 화해시키려는 시도에 속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선가의 주옥같은 구절들을 간화선에서 제기하는 화두 참구의 관점에서 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데, 화두 공부의 핵심 요체를 드러낸 언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우는 자라면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마라.(大抵學者, 須參活句, 莫參死句.)” 동일한 화두에 대해 바르게 의심하면 활구이고,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해서 물들어 버리면 사구가 되고 만다. 이처럼 활구나 사구로 정해진 말이 각각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말이지만 이를 참구하는 방법이나 태도에 따라 활구도 되고 사구도 됨을 깨우친 말이다.
화두를 들 때 그 기저를 이루는 요소인 의단(疑團)과 무간단(無間斷)에 대해서도 요약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사위의(四威儀) 안에서 참구(參究)하는 공안(公案)을 들되, 언제나 그 공안을 놓치지 않고 들고 또 들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사이에 심사(心思)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작용하지 않아 잡을 곳도 없고 자미(滋味)도 없으며 더듬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가슴속이 답답해질 적에 혹시 공(空)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할 것은 없으니, 이때가 바로 화두가 힘을 얻는 때요 힘을 더는 때이며 생사에서 벗어나는 때이기 때문이다. 화두가 환히 밝아져서 억지로 들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게 되고, 의단(疑團)만이 또렷이 드러날 것이다.” 어떤 맛도 없고 모색할 수단도 없는 화두를 있는 힘을 다해 들고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화두의 본질적 속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갖가지 관념을 연상시키는 어떤 맛도 없으며, 일정한 이론이나 분별의 틀로 모색할 실마리도 전혀 없다는 뜻이다.
휴정이 제자들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에게 부친 시나 서신에서도 “조사의 관문을 철저히 꿰뚫으라(祖關須透徹)”,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조사선을 참구해야 한다.(若欲脫生死, 須叅祖師禪.)”라는 당부나 조언의 구절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휴정이 남긴 문헌들이 오늘날에도 선학 연구에 나침반이 되는 까닭은 화두 참구에 대한 휴정의 이처럼 선명하고 예리한 관점 덕분이다.
유불도(儒佛道) 삼가회통론(三家會通論)
휴정이 선과 교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는 일각의 주장처럼 유불도 삼가(三家)를 회통시키고자 하였다는 주장도 학계의 중론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문헌은 당연 『삼가귀감』이며,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만은 아니다. 하지만 휴정의 사유 체계를 들여다볼 때 단순히 유불도 일치를 내세우려 했던 것만은 아닌 듯하다.
휴정은 『삼가귀감』을 짓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삼교(三敎)의 무리들이 각기 다른 견해에 집착하여 기꺼이 함께하려 하지 않는 행태를 많이 보아 왔기에 이제 간략히 삼교의 문호를 열어 통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아! 삼교에서 모두 ‘도’를 말하는데, 도란 무엇인가? ○(원상) 만약 철저히 깨달으면 유가니 석가니 도가니 하는 것이 모두 헛된 이름임을 알게 될 것이다.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이 한 권에 삼교 성인의 면목이 밝게 드러나 있으니, 치우친 견해를 쓸어 없애고 각기 안목을 높여 잘못 스쳐 지나치지 않길 바란다.”
어떤 일로 느낀 심정을 노래한 시[因事有感]에서는 “유가니 석가니 헛된 이름을 달고서 손가락과 말[指馬]을 다투니, 산중이든 도회지이든 저마다 마음 상해하네. 원래 지극한 도는 문자에 구애되지 않으니, 이제 아무 말 없음이라야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리라.(儒釋虛名紛指馬, 山林朝市各酸然. 由來至道離文字, 今日無言政合天.)”라고 읊었다. 공손룡(公孫龍)이 「지물론(指物論)」과 「백마론(白馬論)」에서 폈던 궤변처럼 유가니 석가니 하고 헛된 이름을 달아 붙이고서 다투는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3구와 4구는 휴정이 『선가귀감』 첫 구절 일물(一物)에 대해 읊은 게송 “유불도 삼교 성인은 모두 이 구절[一物]에서 나온다. 한마디라도 거론해 볼 자 누구인가? 눈썹 아까운 줄 알라!(三敎聖人, 從此句出, 誰是擧者? 惜取眉毛!)”라는 취지와 통한다. 마지못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유가니 석가니 도가니 할 뿐이니, 이 이름을 고수하며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옳은 것이니, 생각을 일으켜 분별하는 즉시 어긋나버리기 때문이다. 삼교의 동이점(同異點)을 따지는 따위의 논쟁은 선(禪)의 사유로 보면 허망할 뿐이다. 휴정은 유불도라고 차별 지어 붙인 이름은 단지 허명(虛名)에 불과하며 이들은 모두 한 도(道)에서 나온 것으로서 유교는 성(性)으로, 도교는 기(氣)로, 불교는 심(心)으로 말하고 있을 뿐임을 강조한다. 삼가가 심법(心法)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은 같다 하더라도 이 심법을 닦는 데에는 그 방법상에 차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휴정의 삼가회통 사상은 부용영관(芙蓉靈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부용당행장」에서 “칠요(七曜) · 구장(九章)과 천문(天文) · 의술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으신 것이 없었으므로, 『중용(中庸)』을 품고 다니고 『장자(莊子)』를 끼고 다니는 자들까지도 모두 선사를 찾아와서 의문점을 풀지 못함이 없었다. 이 때문에 문하를 가득 채운 뛰어난 선비들이 모두 생이별의 한을 품었고, 뜰 가득한 승려와 속인들은 다들 떠나지 못하게 말리며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으로 아파했다. 그러므로 영남과 호남에서 속인들조차 삼교에 통하게 된 것은 바로 선사의 기풍 덕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전단(栴檀)을 옮겨 심자 다른 식물도 똑같이 향기를 풍기게 되었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술회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지리산 쌍계사 중창 기문(記文)」에서는 최치원(崔致遠)과 진감혜소(眞鑑慧昭)를 예로 들어 유불(儒佛)의 이치가 서로 통함을 이렇게 피력한다. “옛날에 유불에 정통하고 내외를 통달한 자는 공명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하나의 표주박으로도 가난을 잊었다. …… 그는 자신의 걱정거리를 스스로 걱정할 뿐이요 자신의 즐거움을 스스로 즐겼을 뿐이니, 유가는 불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느니 불가는 유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 비난할 겨를이 어디 있었겠는가. 우리나라의 최고운과 진감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고운은 유자(儒者)이고, 진감은 불자(佛者)이다. 진감은 사찰을 세워서 처음으로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어 주었고, 고운은 비를 세워서 널리 유불의 골수를 뽑아내었다. …… 불학(佛學)을 배우는 자들을 진감처럼 되게 한 뒤에야 유자(儒者)가 유자가 된 까닭을 알게 되고, 유학(儒學)을 배우는 자들을 고운처럼 되게 한 뒤에야 불자(佛者)가 불자가 된 까닭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감을 아는 이로는 고운만한 이가 없고, 고운을 아는 이로는 진감만한 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가를 배열하여 수록한 순서나 다룬 문장 항목의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도교를 포용하려 했던 휴정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삼가귀감 』 말미에서 유불도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사람이 ‘유교는 뿌리를 심었다면 도교는 뿌리를 북돋아 주었고 불교는 뿌리를 뽑았다.’라고 하였으니, 그 차서(次序)를 대개 알 수 있다. 이제 초학(初學)을 위하여 대략 삼가의 문호(門戶)를 열어 제시하였으나, 뒷날 심안(心眼)을 뜨고 나면 반드시 크게 웃으며 질책하리라.”
이수재(李秀才)의 시에 차운[次李秀才韻]한 시에서는 “무심한 구름은 산봉우리에서 까닭 없이 피어 나오고, 뜻을 가진 새는 둥지로 돌아올 줄을 아네. 유가와 석가가 하나라고들 하지만, 하나는 바쁘고 하나는 한가하다오.(無心雲出峀, 有意鳥知還. 儒釋雖云一, 一忙而一閑.)”라고 읊었다. 아무런 먹은 마음이 없는 구름을 석가에, 무언가 하겠다는 뜻을 가진 새를 유가에 비유하였다. 구름은 어디로 향하겠다는 아무 뜻 없이 한가하지만, 새는 지는 저녁 해에 돌아가기 바빠 마음도 잊어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박 학관(朴學官)에게 답한 글」에서는 “대개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에 어떤 이들은 무심(無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연(自然)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나아가 성(性)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리(理)라고 말하기도 하며 도(道)라고 말하기도 하며 심(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여러 말을 떠들어대는데 이는 모두 하나의 죽은 말[死語]일 뿐이다. 선가에서는 이와는 달리 하나의 구절이라도 드러내기만 하면 심(心) · 성(性) · 도(道) · 리(理) · 체(體) · 용(用) · 범(凡) · 성(聖)을 모두 갖추어, 그 모든 것이 원만하게 융합하여 동시에 있으며 전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자를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한 활구(活句)라고 한다. ‘하나의 구절[一句]’이라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눈앞에 드러나 있는 일념(一念)이니, 이 일념이라는 것은 나의 본각(本覺)인 진심(眞心)이다. 지금 이와 같은 활구, 예를 들면 구자불성(狗子佛性) · 백수자(栢樹子) 등과 같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에는 이치의 길도 없고 의미의 길도 없으며 모색할 수 있는 도구도 없다. 이렇듯 칠통과 같은 화두를 의심하여 타파하면 천 가지 만 가지 온갖 의심이 한꺼번에 깨뜨려진다는 말은 모두 이 때문이다. 사구(死句)와 활구가 이와 같이 분명하게 다르다.”
염불정토관(念佛淨土觀)
휴정은 화두를 드는 간화선 수행법을 핵심으로 하면서도 『심법요초』의 「염불문(念佛門)」, 「삼종정관(三種淨觀)」, 「염송(念頌)」 등에서는 간화선의 입장에서 염불 수행을 포용하며 선정일치(禪淨一致)의 염불선(念佛禪)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 중 「염불문」은 『선가귀감』에 나오는 문장과 동일하다.
선사로서 휴정은 염불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단적으로 말한다. “참선(參禪)이 곧 염불이요, 염불이 곧 참선이다.(叅禪即念佛, 念佛即叅禪.)” 참선이 곧 염불이라는 관점이 그 사상적 바탕이다. 간화선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을 염불에 적용한 선정쌍수(禪淨雙修)의 입장이다. 염불의 ‘염(念)’과 간화의 ‘간(看)’은 간단없이 마음에 담아두고 간수(看守)하는 요령과 다르지 않다.
또한 “염불을 할 때 입으로 내는 소리는 ‘송(誦)’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외우는 것은 ‘염(念)’이라 한다. 단지 입으로 소리만 낼 뿐 마음속에서 놓쳐버리면 도를 이루는 데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 ‘나무아미타불’ 6자 진언은 반드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의 경계를 대상으로 삼아 간직하고 잊지 않으며, 입으로는 부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분명하여 산란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딱 들어맞는 것을 염불이라고 한다.”라며 염불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아 주고 있다. 이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정토이니 별도의 다른 정토에 태어날 수 없고, 자신의 성품이 아미타불이니 (자기 밖에서는) 아미타불을 볼 수 없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옳은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 모든 사람의 본성 자체는 비록 부처라고 하여도 드러난 행위에서는 중생일 뿐이니, 현실적인 상(相)과 용(用)으로 따지자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 규봉종밀이 ‘설령 실제 돈오하였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반드시 점차적으로 다지며 수행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대단히 진실하도다! 그러한즉 ‘자신의 본성이 곧 미타’라고 전하는 말이 어찌 나면서부터 석가라거나 타고난 그대로[自然] 아미타불이라는 뜻이겠는가?”라고 한다. 자신의 성품이 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진실한 말이나 그렇다고 일순간에 성불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훌륭한 재목에 물상을 새겨 화려함을 극대화하려면 반드시 조각의 공력이 더해진 다음에야 이룰 수 있는 것과 같아서 훌륭한 재목에 의지하는 것만으로 물상의 화려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이런 이치에서 ‘오직 마음이 정토’라 한다는 뜻이다.
『청허당집』에 실린 여러 선수행자들에게 지어 준 시나 당부하는 편지에서도 염불과 참선이 다르지 않으며 염불을 통해 생사윤회의 길을 벗어날 수 있다고 휴정은 초지일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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