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교의 차이점에서 하나의 이치를 길어 올린 문헌
문헌 제목 풀이
선교결(禪敎訣)
선(禪)과 교(敎)의 논란을 결단하다
선(禪)과 교(敎)를 놓고 벌이는 쓸모없는 쟁론을 해결[訣]하다
용복사(龍服寺) 1630년 발행 청허당집(淸虛堂集) 합본 선교결ⓒ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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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법에 대해 같은 것은 같다고 하고 다른 것은 다르다고 해야 하는데,
손가락과 말[指馬]을 가지고서 서로 쟁론하고 있다.
아! 그 누가 이 쟁론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의 말씀이다.
교란 말이 있는 경계에서 말이 없는 경계에까지 도달하는 것이고,
선이란 말이 없는 경계에서 말이 없는 경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
내가 말하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란, 배워서 알고 생각해서 터득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의 길이 끊어진 경계[心路絶]’를 궁구한 다음에야 비로소 알 수 있으며
스스로 수긍하여 머리를 끄덕인 다음에야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구성과 내용
이 글은 선과 교의 쓸모없는 쟁론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어졌다. 휴정은 이 쟁론을 화해시키는 길은 선과 교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교에서는 근기의 차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편을 시설하지만, 선은 그 모든 방편의 그물을 벗어난 일종의 용(龍)과 같은 존재를 이상적 인물로 내세운다. 그것이 바로 교외별전의 근기이다. 하지만 선가에도 겉모습만 흉내 내고 그러한 종지와 부합하지 못하는 근기가 많기 때문에 휴정은 이를 집어내어 하나씩 비판한다.
휴정이 비판의 근거로 수용한 교외별전이란 사실상 조사선과 간화선을 말한다. ‘마음의 길이 끊어진 경계[心路絶]’를 궁구해야 교외별전의 종지를 알 수 있다고 한 말에 그 숨은 뜻이 드러난다. 이 경계는 간화선에서 말하는 화두의 본질 또는 그것이 실현된 경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예로 드는 염화미소부터 후대 조사들의 기연들은 조사선에서 제기된 본보기이며 이들은 모두 마음의 길을 끊어 놓는 화두 바로 그것이다. ‘모기가 무쇠소 등에 올라탔다.’라고 비유한 말도 이들 기연이 분별로 접근할 수 없는 철벽과 같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것은 이로(理路)․의로(義路)․심로(心路)․어로(語路) 등 모든 방법이 차단된 궁지에서 궁구하여 칠통(漆桶)을 타파하는 교외별전의 소식이며, 어떤 절차와 단계도 없이 처음부터 소식이 없는 은산철벽이라는 목적지에 곧바로 세워진다. 이 때문에 이를 가리켜 경절문(徑截門)이라 한다.
경절문의 화두는 달리 말하면 활구(活句)라 한다. 시종일관 어떤 맛도 없는 활구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이 말 저 말 끌어들여 친절하게 설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화두의 본질을 엄폐하는 역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활구는 하나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말이 없는 경계’를 말이 없는 것으로 고스란히 유지하는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마조의 할(喝)에 백장이 사흘 동안 귀가 먹은 일화를 들고 이것을 임제종의 연원이라 일러준다. 할은 활구를 활구로 살아 있게 하는 소리라는 점에서 화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선 휴정 』 해제에서 발췌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