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 찾을 것도 없고 포착하기 위한 어떤 수단도 없는
교외별전의 종지를 밝히다
문헌 제목 풀이
선교석(禪敎釋)
선(禪)과 교(敎)의 차이를 풀어내다
선(禪) · 교(敎) 두 갈래를 상대적으로 판별하여 해석함[釋]
영발암(永鉢庵) 1617년 발행 선교석ⓒ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문헌 맛보기
교학자 대여섯 명이 벌컥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히고 청허에게 물었다.
“선가의 발언은 분에 넘치고 도가 지나치다. 눈은 있으나 발이 없는 격이 아닌가?”
청허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선가는 눈도 갖추고 발도 갖추었다.
‘영겁토록 생사에 빠져 있을지언정 어떤 성인의 해탈이 되었건 흠모하며 따르지 않는 것’이 선가의 눈이고,
‘타인의 잘못을 보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보는 것’이 선가의 발이다.
아! 세대가 내려오며 성인의 시대와 멀어질수록 마(魔)는 강해지고 법(法)은 약해져 정법을 흙덩이 보듯 하니,
나의 이 말은 한 잔의 물로 수레에 붙은 불을 끄려 하는 것처럼 효력이 약하다.
오조 홍인(五祖弘忍)은 ‘나의 본심을 지키는 것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칭념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였으며,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내가 만약 너를 속였다면, 나는 내생에 대대로 호랑이 밥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배우는 자가 이 말을 듣고도 절실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목석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고덕은 ‘교법(敎法)만 중요하게 여기고 마음을 가볍게 여긴다면,
비록 여러 겁 동안 수행하더라도 모두 천마(天魔)나 외도(外道)가 될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구성과 내용
사명 유정(四溟惟政)을 비롯한 세 제자가 『금강경오가해』를 가지고 와서 『금강경』을 종지로 삼아도 되는지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시작하여, 『화엄경』, 『능가경』, 『반야경』 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과 그 각각에 대한 대답이 주어진다. 휴정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경전을 읽어도 상관이 없다고 전제한 뒤 선과 교를 비교하여 그 특징을 설명하며, 전체적으로 옛 문헌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각 질문마다 경전은 어떤 것이 되었건 모두 특수한 방편에 불과하여 선문의 종지로 삼을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선문이란 모든 방편의 통로를 막는 간화선의 수단이라는 점이 곳곳에 보인다.
부처님의 탄생담을 인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그 자료는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분별에 치우친 「설화(說話)」의 해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들추어내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에게 교외별전의 조사선을 전했다고 하는 진귀조사(眞歸祖師)의 전설도 소개되고 있다. 교외별전의 종지는 교학자들이나 선종의 하근기는 알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가섭과 아난은 중생 구제를 위해 성문의 몸으로 나타난 응화성문(應化聲聞)의 보살이다. 교외별전을 전수 받은 최초의 불제자로 이들이 거론된 이유는 선종의 법맥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세존께서 일생 동안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게송으로 교외별전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원교와 돈교는 교학의 극치를 대표한다. 교학의 궁극적 도리마저 사라진 그 자리에 비로소 선가의 일심(一心)이 드러난다. 원교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해(性海)의 교설은 이치로 통하는 길의 함정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십종병의 근원에서도 벗어나지 못하여 증득한 경지가 선가의 심인(心印)과 유사한 듯하지만 교외별전의 종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명상(名相)을 완전히 끊은 돈교도 마찬가지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원교나 돈교는 본질적으로 수행이라는 원인과 그것을 성취하는 결과라는 단계적 자취를 떠날 수 없지만, 선가의 궁극은 원인과 결과가 처음부터 없어 생각으로도 알 수 없고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어떤 시도도 할 수 없도록 주어지는 것이 바로 화두이기 때문에 이 두 교설을 화두의 활구와 반대편에 놓고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다. 『능가경』의 전수를 선문의 증거로 삼는 선종 사가들의 설도 이 관점에서 부정된다. 성주화상(聖住和尙) 등이 『능가경』 공부를 버리고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을 전수 받았던 일화를 제기한 의도도 동일한 뜻이다.
덕산(德山)이 『금강경소초』를 불태운 인연 등과 더불어 문답을 주고받다가 깨우친 선사들의 사례를 들고 그 모든 것의 근거는 경전이 아니라 바로 심인(心印)이라고 결론짓는다.
발문(跋文)에는 교학자와 선학자의 문답이 수록되어 있다. 교학자가 경전의 근거를 가지고 묻고 선학자가 선사의 입장에서 조명하여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 선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문답에 근거를 둔 선문답의 일종이다. 모든 교학적 개념과 인식 틀에 들어 있는 가치를 무너뜨려 더 이상 의지처가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선가의 안목을 보여 준다. 이 문답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것인데 서산이 『선교석』의 발문으로 쓸 만하다고 판단하여 붙인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선 휴정』해제에서 발췌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