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시작된 석굴사원(石窟寺院)의 전통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졌고, 동아시아 불교의 종착점인 일본까지 이어졌다. 마애불이 조성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는 자연 환경이다. 사막 지대의 사암(砂巖)을 배경으로 석굴사원의 조성이 성행하였던 중국에 비해, 화강암이 국토의 다수를 차지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단단한 재질의 화강암을 다루는 제작 기술을 숙련시켜 중국의 석굴사원을 고유의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자연 환경에 대한 적응(適應)의 과정은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마지막 도착지인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화산의 작용으로 인하여 형성된 응회암(凝灰巖)과 화강암(花崗巖) 지대가 혼재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일본의 마애불은 중국, 우리나라와 비슷한 양상을 지니면서도 독자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일본은 환경적 특성상 석재보다는 나무, 또는 금속이 불교 조상(造像)의 주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일본에 불교 문화가 전개되기 시작한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92-710)에는 석조(石彫) 불상보다는 금속(금동, 동)제 불상의 조성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일본에서 석조의 불교 조각이나 탑 등이 등장하는 시기는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 후기-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 초기 무렵부터이다. 일본의 마애불 역시 7-8세기 무렵에 해당하는 이 시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헤이안(平安)-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에 걸쳐 전국에 다수의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일본의 마애불을 재질로 나누자면, 크게 화강암제 마애불과 응회암제 마애불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재질에 따라 지역적 차이뿐만 아니라 제작 방식의 차이도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응회암제 마애불의 경우에는 헤이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반면, 화강암제 마애불의 등장은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시작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마애불 대부분이 화강암을 주재료로 삼고 있다는 것과 조금 더 연관성이 있다고 하겠다. 일본의 마애불이 우리나라 마애불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하겠다. 그러나 일본 마애불의 시작이 화강암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은 적어도 일본의 마애불 문화의 시작이 중국 당(唐, 618-907)-통일신라(統一新羅, 676-935)-헤이안(平安, 794-1185)이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화강암 재질_고마사카 마애불 ⓒhttps://ja.wikipedia.org/wiki
화강암 재질_교토부 와즈카 미륵마애불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응회암 재질_이누카이 마애불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응회암 재질_우스키 마애불 고원 석굴군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불로 알려진 고마사카 마애불(狛坂磨崖仏, こまさかまがいぶつ)은 화강암제의 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마애불이다. 높이 3m 이상의 화강암 바위면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양 손을 가슴 앞에 두고 상현좌(裳顯坐)를 취한 여래좌상 양 옆에 보살입상이 시립해 있는 삼존형식으로, 그 주변에 삼존, 독존의 화불을 함께 새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마애불은 7-8세기 중국 당(唐) 양식으로 제작되었으며, 텐표[天平] 양식으로도 일컬어지는 일본 나라 시대의 불상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마애불은 응회암 지역의 마애불이 거의 환조에 가까운 고부조로 제작된 것과는 달리, 강도가 높은 화강암이라는 재질적 특성상 부조의 두께가 얕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통일신라 마애불의 특성과도 유사한 점으로, 이는 8-9세기 통일신라의 문화가 일본 문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마애불의 주변에 새겨진 삼존과 독존의 여러 불상들은 통일신라 9세기 불상 광배의 화불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불교 문화가 이 마애불의 조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마애불 주변에서는 하쿠오(白鳳, 645-710) 시대의 기와편들이 발견되기도 하여, 그 조성 시기를 7세기 후반 무렵으로 올려보기도 한다. 일본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는 이 마애불이 통일신라의 마애불과 유사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은 이 시기에 통일신라의 마애불 문화와 기술이 일본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화강암제 마애불의 조성이 고대부터 일본에서 활성화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나라-헤이안시대 초기에는 통일신라와 같은 마애불의 조성이 시도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일본 진언종(眞言宗) 지산파(智山派) 사원인 카사기데라(笠置寺, かさぎでら)에는 664년 오오토미노미코(大友皇子, おおとものみこ:弘文天皇)의 발원으로 화강암 암벽에 조성된 거대한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마애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고마사카 마애불 복제품(릿토역사민속박물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카사기데라 아미타여래 마애불의 흔적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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