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감국사 충지(冲止, 1226~1292)의 시문집
해동조계제육세원감국사가송-송광사(1920)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 ⓒ국가유산청
문헌 제목 풀이
‘원감국사(圓鑑國師)’는 고려 후기의 고승 충지(冲止, 1226~1292)가 입적한 뒤 추증된 시호이다. ‘집(集)’은 충지가 남긴 여러 글을 모아 엮은 문집을 말한다. 시문을 포함하여 소(疏), 표(表) 등 충지가 남긴 다양한 형식의 글이 이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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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 밖에 둥지를 틀고 棲息紛華外
푸른 산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네 優游紫翠間
솔 회랑은 봄에 더욱 고요하고 松廊春更靜
대쪽 문은 대낮에도 닫혔어라 竹戶晝猶關
처마가 짧아서 먼저 달을 맞고 檐短先邀月
담장이 낮아서 산이 다 보이네 牆低不礙山
비 온 뒤에 시냇물은 급히 흐르고 雨餘溪水急
바람이 자니 산 구름이 한가해라 風定嶺雲閑
깊은 골짜기에 사슴이 엎드리고 谷密鹿攸伏
빽빽한 숲에는 새들이 돌아오네 林稠禽自還
한가로이 아침저녁 보내노니 翛然度晨暝
게으른 몸에게는 적격이라오 聊以養疎頑
-「유거幽居」-
저자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冲止, 1226~1293)
감로암 원감국사비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제6세 원감국사 충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속성은 위(魏), 속명은 원개(元凱)이다. 본래의 법휘는 법환(法桓)이었으나 후에 충지로 개명하였다. 자호(自號)는 복암(宓菴), 탑호는 보명(寶明)이다.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고, 사마시(司馬試)와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여 19세에 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일찍부터 속세를 떠날 뜻을 품고 있었던 충지는 몽고의 침입으로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 29세에 강화도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로 출가하였다. 출가 후에는 김해 감로사(甘露寺),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 조계산 수선사(修禪社) 등지에서 정진하였다. 1276년에는 대선사에 임명되었고 1286년에는 수선사 제6세에 올랐다. 이후에도 정진과 교화에 힘쓰다가 법랍 39세, 세수 67세로 입적하였다.
구성과 내용
『원감국사집』은 두 계통의 판본이 전한다. 하나는 한국불교전서 제6책에 수록되어 있는 『해동조계제육세원감국사가송(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불교전서 제11책에 수록되어 있는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海東曹溪宓庵和尙雜著)』이다. 동국대학교 한국불교전서 역주사업단에서 출판한 한글본 『원감국사집』은 『원감국사가송』을 저본으로 삼고 『복암화상잡저』에 실려 있으면서 저본에는 없는 8편의 글을 합쳐 번역한 것이다.
『원감국사가송』은 본래 진경(眞冏)이 1297년에 필사한 것을 1447년에 나주에서 간행한 것이다. 이 판본은 국내에는 전하지 않다가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일본에서 그 중간본을 입수하여 국내로 전하였고, 여기에 임석진(林錫珍, 1892~1968)이 『동문선』에서 수집한 글들을 보충하여 1920년 송광사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최남선이 입수한 판본은 시 324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송광사에서 간행된 활자본에는 시 5편, 문 5편, 소 46편, 표 5편이 추가되었고, 부록으로 「조계산 제6세 증시 원감국사비명(曹溪山第六世贈諡圓鑑國師碑銘)」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복암화상잡저』는 서지 사항이 분명하지 않으나, 도합 6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56편은 『원감국사가송』과 내용이 겹친다.
원감국사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시뿐 아니라 여러 문체의 글을 수준 높게 구사하였다. 이 문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시이다. 그 중에서도 「우중독좌(雨中獨坐)」,「한중잡영(閑中雜詠)」 등은 구도 과정에서 자연과 나눈 교감이나 수행의 경지를 담아낸 작품으로, 서정적이고 선취적(禪趣的)인 면모가 돋보인다. 아울러 「영남간고상 이십사운(嶺南艱苦狀 二十四韻)」, 「민농흑양사월단일 우중작(憫農黑羊四月旦日 雨中作)」과 같은 작품은 원나라의 침략과 수탈로 피폐해진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곤궁한 사회 현실을 고발한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소나 표 등의 산문에는 「상대원황제표(上大元皇帝表)」, 「축성소(祝聖疏)」와 같이 원나라 황제와 고려 왕에게 올린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 글들은 백성과 나라를 향한 국사의 애절한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당시 고려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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