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문(四天王門)은 다섯 번째 마주하게 되는 수덕사의 마지막 문이며, 인곡 법장(仁谷法長, 1941~2005) 스님이 중창불사를 일으켜 사하촌을 정비하면서 세워졌다.
1999년 사천왕문을 건립할 당시의 상량문이 『수덕사 중수기』(2002)에 수록되어 있다. 상량문에서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렸던 수덕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한국 불교의 중흥을 이룬 수덕사의 면모를 되짚었다. 그리고 수덕사의 산문이 부족함을 아쉬워하던 원담 스님의 교시로 사천왕문을 건립하게 된 연유를 언급하고, 이 문을 드나드는 대중들의 해탈을 기원하는 것으로 글을 마쳤다. 이후로 원담 스님의 상량송과 참여 인원의 인명을 열거하였다.
원문
四天王門上梁文
德崇山은 옛부터 山勢가 아름다워 湖西의 小金剛이라 일컬었고 修德寺는 世尊의 正法이 密轉되어 祖燈이 꺼지지 아니하고 印度를 거쳐 중국에 五家七宗의 꽃을 피웠는가 하면 바야흐로 海東으로 傳해 昨今까지 佛祖의 慧命을 이어가는 祖印精舍가 境內에 있음으로도 가히 짐작케 할만하리라.
그러나 1600여년의 역사 속에 우리 불교는 盛旺 微弱을 거듭하면서 轉轉하던 歲中에 朝鮮祖의 崇儒仰佛로 禪脈이 泯減하던 次에 홀연히 혜성처럼 나타나신 鏡虛禪師께서 槿域禪風을 振作하여 滿空禪師께 계승되면서 한국 불교를 다시 中興케 하였으니 이곳을 어찌 禪之宗刹이라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山門에서부터 가람에 이르기까지 여의치 못함을 아쉽게 生覺하던중 德崇叢林 方丈 圓潭大宗師의 敎示에 따라 此天王門을 建立하게 되었느니라.
入此門內者는 萬惱가 永滅하고 항상 八部金剛이 外護하여 萬事가 如意亨通 吉祥할 것이요. 參禪之者 正覺하고 看經之者 慧眼이 大振하며 念佛之者 往生極樂할것이요. 祈福之者 大成할진대 이를 일러 어찌 解脫이 아니라 하겠는가.
이로써 靈山會上의 慧燈이 더욱 빛나고 小林家風이 十方에 두루할 것을 誓願하면서 上梁記에 대하느니라.
佛紀 2542年 戊寅 陰 10月 초하루 庚午巳時 上梁
頌 德崇叢林 方丈 眞恒 圓潭
誰知虛空說
山靑流水淸
證明 方丈 圓潭
首座 雪靖
維那 愚松
住持 仁谷 法長
總務局長 只和
敎務局長 宙耘
財務局長 正黙
布敎局長 徑學
社會局長 珍碩
護法局長 應準
事 務長 李奎菜
事務次長 郭鎬一
立繩 法眼
閑主 法賢, 法光
秉法 法龍, 仁行, 應觀, 應傳
院主 曉精
講師 巨芙
持殿 法住
供司 菜供菩薩
片手 田興秀
外 大衆一 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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