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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감주 소개

정토에 관한 기억해야 할 것을 법수로 정리한 문헌
『 정토감주』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
문헌 제목 풀이
제목의 ‘감주(紺珠)’는 중국 당(唐)의 장열(張設, 667~731)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장열은 평소 사소한 일까지 모두 알았지만 기억력이 없어서 괴로워하였다. 그런데 한 나그네로부터 ‘감주’, 곧 ‘감색 구슬’ 하나를 받았는데 그것을 손바닥에 잡고 있으면 지나간 일이 명료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정토감주』는 정토에 관한 사항들을 잊지 않으려 법수의 체계에 따라 간추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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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一念) 자조종주(慈照宗主)의 말씀이다. 이 도(道)는 지극히 그윽하고 오묘하며, 또한 지극히 간단하고 쉽다. 간단하고 쉽기 때문에 고명(高明)한 이들은 이것을 소홀히 한다. 무릇 생사는 한 생각(一念)을 떠나지 않고 나아가 세간과 출세간의 온갖 법도 모두 한 생각을 떠나지 않으니, 지금 바로 이 생각으로 염불하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고 가까우며 정밀하고 진실한 것이겠는가! 만일 이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간파한다면 바로 자성(自性)의 미타요, 바로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다. 비록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이 생각의 힘을 탄다면 극락에 왕생하고 또 생사를 가로질러 끊어서 윤회를 받지 않고 끝내는 크게 깨달을 것이다. ・ 십이(十易) 『미타참법』에 나온다 극락에 왕생하는 것에는 열 가지 쉬움이 있다. 첫째, 믿고 이해하고 발심하면 되기에 왕생하기 쉽다. 둘째, 적은 선을 닦으면 되기에 왕생하기 쉽다. 셋째, 무릇 한 가지 관(觀)을 닦으면 되기에 왕생하기 쉽다. 넷째, 자비와 빛과 원력으로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왕생하기 쉽다. 다섯째, 모든 교법에서 칭찬하고 권하기에 왕생하기 쉽다. 여섯째,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고 권하기에 왕생하기 쉽다. 일곱째, 뭇 성인들이 보호하기에 왕생하기 쉽다. 여덟째, 두 성인이 교화하고 거두어들이기에 왕생하기 쉽다. 아홉째, 염불하면 뭇 죄를 없애기에 왕생하기 쉽다. 열째, 임종 때 성인이 맞이하기에 왕생하기 쉽다.
저자
허주 덕진(虛舟德眞, 1815~1888)
덕진의 호는 허주이고, 속성은 김씨이다. 1815년 3월 13일 홀어머니 박씨로부터 태어나서 1888년 10월 12일(혹은 11월 17일) 입적하였으니, 세수는 74세이고, 법랍은 63년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여의어 걸식하였는데, 조계산의 선방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의탁하여 살았다. 11세 때인 1825년 한 수좌의 권유로 출가한 뒤, 제방을 유력하면서 수행하였다. 경전은 한성 침명(1801~1876)[1]『동사열전』 침명강백전(枕溟講伯傳) (H. v10, p.1043c01)에게서 배웠고, 선은 인파(印波)를 참례하여 배웠다. 30세에 은적암(隱寂庵)에서 건당하고 주석하니 납자들이 무수히 몰려들었다. 강석에서 어려운 질문에 답변할 때는 반드시 눈을 감았는데, 그것이 마치 못을 끊고 무쇠를 자르는 것처럼 과단성이 있었다고 한다. 선사는 어느 날 7일간 지장기도를 한 뒤 시루떡 한 사발을 얻는 꿈을 꾸었다. 이로부터 자비의 덕이 온몸에 가득하였고, 총명한 지혜가 남을 능가했으며, 한번 들으면 잊지 않는 불망념지를 얻게 되었다. 이후 그의 선풍이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1888년 가을, 초청을 받아 한양성에 들어가 동별궁에서 보광법회를 시설하여 7일 동안 기도와 축원을 했는데, 귀비와 중신들 가운데 향을 사르고 선사를 섬기며 예배드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법회를 마친 뒤 선사가 궁을 떠나려고 하자, 동대문 밖 대원사를 하산했을 때의 머무는 장소로 지정해 주기도 하였다. 같은 해 10월 10일 가벼운 병을 보인 뒤, 이틀이 지난 새벽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게송을 남긴 뒤 조용히 입적하였다. 선사의 입적 소식이 전해지자 귀비와 신첩들이 모두 애통해하면서 향과 등불과 종이와 같은 시주물을 보시하였고,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많은 재물을 내었는데, 이런 소식이 고종 임금에게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제자인 퇴운 등이 영골을 수습하여 조계산에 부도탑을 세웠다.[2] 금명 보정(1861~1930)이 편찬한 『조계고승전』「조계종사 허주 선사전」에 상세하다.
구성과 내용
구성
『정토감주 』는 처음에 1879년 6월에 작성된 노련 거사의 「정토감주 서문」과 허주 덕진이 직접 쓴 「자서」, 「일러두기」, 「인용한 책의 제목」 등이 실려있다. 본문은 ‘일심(一心)’ 항목의 설명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사십팔원(四十八願)’ 항목에 대한 설명으로 끝난다. 다음으로 보화거사 유엽이 1880년에 쓴 「발문(跋)」이 나오며, 제일 마지막에는 이 책을 목판에 새길 때 시주한 인물들의 명단과 간기가 실려있다.
주요 내용
노련거사가 쓴 서문을 보면, 덕진 선사는 종승을 깨달은 승려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이지만, 사람을 가르칠 때는 정토문에 의거하여 간곡하게 가르침을 폈다고 한다. 「자서」에는 정토 수행을 강조하는 나그네의 질문을 길게 수록하여 선뿐만 아니라 정토와 관련된 염불삼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염불 수행은 선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자서」의 게송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惟有一門可超昇  하나의 문이 있어 뛰어넘을 수 있으니 念佛徃生安樂刹  염불하면 안락국에 왕생하고 親見如來無量壽  여래 무량수불을 직접 뵈옵고 得聞微妙眞正法  미묘하고 참된 바른 법을 들을 수 있으리라. 淨土法要以數彙  정토의 법요를 숫자로 모았으니 見聞咸證勝妙樂  보고 듣는 이들이 다 훌륭하고 묘한 즐거움 증득하고 白毫祥光徧大千  백호의 상서로운 광명이 대천세계를 비추어 泥犁翻成藕華國  지옥이 변하여 우화국을 이루리라.
게송 가운데 “정토의 법요를 숫자로 모았으니”라고 한 것은 이후 나올 본문의 내용이 일에서 사십팔에 이르는 개념들을 소개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우화국은 극락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문은 하나의 개념과 출전,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선과 정토의 수행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내용 역시 등장하는 점이다. 그 가운데 대전 선사의 일언(一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언(一言) 대전 선사(大顚禪師)[3] 대전 선사(732~824)는 당의 승려로서 법호는 보통이고, 자호는 대전화상이라고 하였다. 서산에서 약산 유엄과 혜조를 섬기다가 다시 남악에 가서 석두 희천을 뵙고 종지를 크게 깨쳤다. 조주 서유령 아래에 영산선원을 세웠는데 출입할 때마다 호랑이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유학자 한유와의 교제로도 유명하다. 의 말씀이다 부처님이 가신 곳을 알고자 하는가? 단지 이 말소리 나는 곳일 뿐이다.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한마디(一言)를 들을 때 지금 이 순간에 누가 입을 움직이는가? 경에서 “극락이라고 하는 세계가 있다. 그 땅에 아미타라고 하는 부처님이 있는데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신다.”라고 하였다. 소리마다 자기의 가슴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분명히 관찰하고 생각마다 끊어지지 않게 하며 하루 종일(十二時) 항상 이 경을 읽어라. 부처님을 부르는 한 소리가 한 소리로 응하면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너무나 분명해질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근원으로 되돌아갔다(返本還源)고 부를 것이다. 무엇이 근원인가? 물은 흘러가도 원래 바다에 있고,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
윗글의 내용을 보면 후대 선종에서 유행하게 된 염불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는 말소리가 나는 근원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의 구체적인 사례로 『아미타경』을 독송할 때 그 소리의 근원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본래면목을 확인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마지막에 두 가지의 사십팔원을 소개하는 것으로 본문이 끝난다. 이어지는 「발문」은 보화 거사 유엽이 1880년에 쓴 글로서, 그가 1879년 덕진 선사에게서 삼교의 이치가 ‘심(心)’ 한 글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들은 법문을 기술함과 동시에 덕진 선사가 편찬한 『정토감주』에 대한 간략한 평을 정리한 내용이다. 삼교일치의 경향 역시 후대 동아시아 불교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덕진 선사의 법문 속에서 서산의 『삼가귀감』에서 ‘심(心)’을 중심으로 삼교를 회통하는 논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련주석
  • 주석 1 『동사열전』 침명강백전(枕溟講伯傳) (H. v10, p.1043c01)
  • 주석 2 금명 보정(1861~1930)이 편찬한 『조계고승전』「조계종사 허주 선사전」에 상세하다.
  • 주석 3 대전 선사(732~824)는 당의 승려로서 법호는 보통이고, 자호는 대전화상이라고 하였다. 서산에서 약산 유엄과 혜조를 섬기다가 다시 남악에 가서 석두 희천을 뵙고 종지를 크게 깨쳤다. 조주 서유령 아래에 영산선원을 세웠는데 출입할 때마다 호랑이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유학자 한유와의 교제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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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금명보정 엮음, 김용태·김호귀 옮김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20 상세정보
  • 조선후기 불교의 수행체계 연구: 三門修學을 중심으로
    학위논문 이종수 | 국내박사학위논문 | 동국대학교 대학원 | 2010 상세정보
  • 정토감주
    도서 허주 덕진 편, 김석군 역 | 동국대 출판부 | 2021 상세정보
  • 19세기 불서간행과 유성종의 『덕신당서목』 연구
    학위논문 서수정 | 국내박사학위논문 | 서울: 동국대학교 | 2016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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