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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망경술기 소개

신라 출신의 유식학자 승장이 지은 『범망경』 주석서
『범망경술기』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문헌 제목 풀이
『범망경』은 10개조의 중죄와 48개조의 경죄, 일명 ‘십중사십팔경계(十重四十八輕戒)’를 상세히 설한 대승 보살의 계경(戒經)이다. ‘술기’란 선학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주석을 붙였다는 뜻이다. 즉 『범망경』에 승장이 주석을 붙인 문헌이 『범망경술기』이다. 『범망경보살계본술기』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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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을 개괄적으로 논하면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살생이라 한다. 이와 같은 살생을, 대승과 소승은 모두 금계로서 제정하였지만, (적용의 기준을 정함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성문의 가르침은 단호한 것이어서 이익이 된다고 여겨지든 이익이 된다고 여겨지지 않든 간에 어느 경우이든 결코 살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살계에서는 이익이 된다고 여겨지면 살생을 허락한다. 그러므로 『유가사지론』 제41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살들이 보살의 청정한 계율의에 머물면서 훌륭한 방편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함으로써 여러 성죄性罪에 해당하는 것 가운데 적은 부분이 현행했다면,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계를 범하는 일은 없고 오히려 많은 공덕을 낳는다. 예를 들면 보살이, 남의 물건을 빼앗고 훔치는 도적이 재물을 탐하여 많은 중생을 죽이려고 하거나, 혹은 큰 덕을 가진 성문과 독각과 보살을 해치려고 하거나, 여러 가지 무간업(無間業)을 짓거나 하는 것을 보되, 이러한 일들을 보고 나서 (구제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생각하기를 ‘내가 저 악한 중생의 생명을 끊는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만약 그의 생명을 끊지 않는다면 그는 무간업을 성취하여 장차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내가 차라리 그를 죽여서 나락가(那落迦)에 떨어질지언정 끝내 그로 하여금 무간지옥에서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고통을 받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고 하자. 이와 같이 보살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생각하여 저 중생에 대해 혹은 선심(善心)이나 혹은 무기심(無記心)으로 그 일로 인해 생겨날 모든 일들을 잘 알고 그를 미래의 나쁜 과보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매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에 의해 그의 생명을 끊는다고 하자.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계를 위반하는 일은 없고 오히려 많은 공덕을 낳게 된다.
저자
승장(勝莊, ?~?)
생몰년 미상. 당에서 활약했던 신라 출신의 유식학자이다. 정리되어 있는 전기는 전하지 않고,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730), 『속고금역경도기(續古今譯經圖紀)』(730), 『송고승전(宋高僧傳)』(982), 「대주서명사고대덕원측법사불사리탑명병서(大周西明寺故大德圓測法師佛舍利塔銘并序)」(1115) 등의 몇몇 문헌에서 단편적인 행적만이 일부 확인된다. 보리류지(菩提流志, 572~727), 의정(義淨, 635~713) 등의 역장에서 현장(玄奘, 602?~664) 문하의 법보(法寶, ?~?), 화엄종의 법장(法藏, 643~713) 등과 역경에 종사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므로, 대략 7세기 중반~8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승 관계에 대해서는 원측(圓測, 613~696)의 문인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제시되어 있다. 저서로는 『범망경술기』 4권을 포함하여 『인명정리문론술기』 1권, 『잡집론소』 12권, 『성유식론결』 3권, 『금광명최승왕경소』 8권 등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 전문이 남아 있는 것은 『범망경술기』가 유일하다.
구성과 내용
본 문헌은 크게 다섯 부분[五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교흥제목(敎興題目)」은 가르침이 일어난 배경과 경전 제목의 유래를 다룬다. 둘째 「변경종체(辨經宗體)」는 경전의 종지(宗旨)와 교체(敎體)를 논한다. 셋째 「섭교분제(攝敎分齊)」는 이 경전이 불교 전체의 가르침 안에서 어느 범주에 포섭되는지를 규명한다. 넷째 「교소피기(敎所被機)」는 이 가르침이 어떤 중생을 대상으로 하는지를 밝힌다. 다섯째 「판문해석(判文解釋)」은 경문의 단락을 나누어 풀이하는 본격적인 주석 부분이다. 「교흥제목」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먼저 경전의 제목인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제십(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第十)』을 구성하는 ‘범망’·‘경’·‘노사나’ 등의 용어를 하나씩 짚어 해설한다. 다음으로 경전 제목을 구성하는 방식을 인(人)·법(法)·유(喩)·인법(人法)·인유(人喩)·법유(法喩)·인법유(人法喩)의 일곱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 경전의 제목은 인유, 즉 사람[人=노사나불]과 비유[喩=범망]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변경종체」는 종(宗)과 체(體)를 차례로 논한다. 종에 대해서는 먼저 유가행파의 삼시교판(三時敎判)에 의거하여 불교 전체의 종지를 개관한 뒤, 『범망경』의 종지를 심지법문(心地法門)으로 규정한다. 다만 『범망경』이 이 삼시교판의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는 명시하지 않는다. 체에 대해서는 섭망귀진문(攝妄歸眞門), 섭말귀본문(攝末歸本門), 섭가종실문(攝假從實門), 법수정체문(法數定體門)의 네 관점을 제시하고 각각을 상세히 해명한다. 「섭교분제」에서는 십이분교(十二分敎)·삼장(三藏)·이장(二藏)의 분류 체계에 따라 『범망경』이 불교 문헌 전체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밝힌다. 「교소피기」에서는 유가행파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준거로 삼아, 중생을 성문정성(聲聞定性)·연각정성(緣覺定性)·보살정성(菩薩定性)·부정성(不定性)·무반열반성(無般涅槃性)의 다섯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범망경』의 가르침이 향하는 대상은 이 가운데 보살정성과 부정성의 두 유형이라고 규정한다. 「판문해석」에서는 『범망경』의 본문을 수문해석(隨文解釋)한다. 경전 전체를 서분(序分)·정설분(正說分)·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는 삼분과(三分科)의 구도 아래 주석이 전개되며, 십중사십팔경계 등 『범망경』의 주요한 교설에 대한 구체적인 주석이 이루어지는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분과에 있어서는 『범망경』의 상권과 하권을 포괄하지만, 본격적인 주석은 십중사십팔경계가 설해지는 하권의 정설분에 집중되고 있다. 본 문헌은 『유가사지론』 「보살지」, 『보살지지경』 등에 설해지는 유가계(瑜伽戒)를 중심으로 『범망경』의 범망계(梵網戒)를 포섭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동시에 당시 유통되던 여러 『범망경』 주석서의 영향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주석서들 사이의 상호 영향 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의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 문헌을 통해 우리는 유식학의 관점에서 『범망경』을 재해석하면서도 독자적인 견해를 모색했던 승장의 사유와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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