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교관 체계의 핵심을 간결하게 정리한 천태학의 강요서
『천태사교의』 기복도감 간행본(1315) ⓒ국가유산청
문헌 제목 풀이
‘천태(天台)’라는 말은 중국 천태종의 개산조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 또는 지의 이후 전개되어 온 천태 사상을 포괄하는 말이다. ‘사교’는 지의가 수립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화법사교(化法四敎) 두 교판의 통칭이다. ‘의’는 법식(法式)을 뜻한다. 즉 『천태사교의』는 천태 교판의 법식을 집약하여 정리한 책이라 풀이할 수 있다. 지의 만년의 저작인 『사교의(四敎義)』와 구별하기 위해 저자의 이름을 빌어 ‘제관록(諦觀錄)’이라고도 부른다.
문헌 맛보기
어느 곳에 천연의 미륵과 자연의 석가가 있겠는가.
어떤 이는 ‘생사는 열반과 상즉해 있다’, ‘번뇌는 보리에 상즉해 있다’, ‘마음이 곧 부처이다’,
‘움직이지 않고도 곧장 도달한다’, ‘수행을 더하지 않아도 바로 정각을 이룬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방 세계는 모두 정토이니 향하고 대면하는 이 가운데 깨닫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부처에 상즉해 있는 것은 이치로서 상즉(理卽)한 것이며 바탕으로서의 법신(素法身)일 뿐이다.
장엄함이 없다면 수행하는 것과 증득함이 어찌 관련이 있겠는가.
우리 어리석은 무리들이 “공에 상즉해 있다(卽空).”는 말을 듣자마자 수행을 폐해 버린다면,
“즉(卽)”이라는 말의 연유를 모르는 것이니 쥐가 찍찍거리고 새가 구구대는 것과 같다.
경론에 자세히 있으니 찾아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
제관(諦觀, ?~971?)
고려 광종(光宗, 925~975) 시기에 활약했던 천태종의 고승. 상세한 전기는 전하지 않는다. 961년 오월(吳越)의 충의왕(忠懿王, 錢弘俶, 929~988)의 요청에 따라 중국에서 산일된 천태 전적 등의 불전을 가지고 고려 조정의 사자로 파견되었다. 이후 귀국하지 않고 천태종 제15조 나계 의적(螺溪義寂, 919~987) 문하에 들어 10여 년간 수학하다가 입적했다. 제관이 입적한 뒤 그가 남긴 상자에서 방광(放光)이 일어나 열어보았더니 그 안에 『천태사교의』가 들어 있었다고 전한다.
구성과 내용
문헌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천태종의 교판론인 화의사교(化儀四敎)와 화법사교(化法四敎)를 중심으로 천태 교학의 체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헌이다. 25방편, 십승관법(十乘觀法) 등 수행론도 간략하나마 서술되고 있다.
오시(五時)란 석존의 일대 설법을 화엄시(華嚴時)·녹원시(鹿苑時)·방등시(方等時)·반야시(般若時)·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의 다섯 시기로 구분한 것이다. 화의사교는 석존이 중생을 가르치는 형식을 돈교(頓敎)·점교(漸敎)·비밀교(秘密敎)·부정교(不定敎)의 네 종류로 나눈 것이다. 화법사교는 석존의 설법 내용을 장교(藏敎)·통교(通敎)·별교(別敎)·원교(圓敎)의 네 가지로 구별한 것이다. 본서는 이와 같은 오시팔교 교판을 중심으로 천태종의 입장에서 불교의 전반을 조망한다.
먼저 오시와 화의사교를 연계시켜 설명한다. 화엄시부터 반야시까지의 앞 4시를 돈교와 점교에 대응시키는 것이다. 석존이 정각을 이룬 뒤 그 심오한 깨달음의 내용을 곧바로 설한 『화엄경』이 돈교에 해당하며, 이후 석존이 중생의 능력에 대응하여 녹원시, 방등시, 반야시의 순서로 가르침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방식이 점교에 해당한다. 비밀교는 어떤 이에게는 돈교를 설하고 다른 이에게는 점교를 설하되, 서로가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각자 이익을 얻게 하는 설법 방식이다. 부정교는 석존의 일음설법(一音說法)을 중생이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각기 달리 이해하는, 일정하지 않은 설법 방식을 말한다. 비밀교와 부정교는 별도의 시기를 갖지 않고 앞의 4시에서 가운데 나타나는 형식이다. 한편, 제5시인 법화열반시는 비돈비점(非頓非漸)의 가르침으로 규정된다. 앞의 4시를 거치며 중생의 근기가 충분히 성숙된 뒤에야 석존의 진정한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법화경』이 설해지고, 그때까지도 가르침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 중생을 위하여 보충적으로 『열반경』이 설해지는 시기이다.
이어서 화법사교를 설명한다. 첫째, 장교는 삼장교(三藏敎)라고도 불리며, 4아함 등의 소승 경전, 『구사론』 등의 아비달마 논서, 5부율과 같은 율장, 즉 소승 삼장의 가르침 전반을 가리킨다. 둘째, 통교는 앞의 장교에도 통하고 뒤의 별교와 원교에도 통하므로 그 명칭을 얻었다. 혹은 성문·연각·보살의 삼승이 공통적으로 배우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통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야 계통 경전에서 설해지는 공반야(共般若)의 가르침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별교는 삼계를 벗어난 경지[界外]에서 오직 보살만을 위한 가르침[獨菩薩法]이다. 『화엄경』, 『영락경』 등의 보살 계위를 밝히는 가르침이 이에 속한다. 넷째, 원교는 일체의 차별적 요소가 사라진 원융무애(圓融無礙)한 가르침이다. 원교만을 전적으로 설한 경전으로는 『법화경』이 있으며, 여타 대승 경전에서도 부분적으로 원교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천태사교의』에서 이 화법사교는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서술의 분량도 단연 가장 많다.
마지막으로 수행론이 약술된다. 전방편(前方便)으로서 구오연(具五緣), 가오욕(訶五欲) 등의 25방편과 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 진정발보리심(眞正發菩提心) 등의 십승관법(十乘觀法)이 간략히 소개된다.
『천태사교의』는 방대한 천태 교관 체계의 핵심을 압축한 입문서로서, 편찬 이후 동아시아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찬술된 주석서만도 대략 70여 종에 이르며, 이를 다시 풀이한 말주서(末註書)도 130여 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송의 종의(從義, 1042~1091)가 지은 『사교의집해(四敎儀集解)』 3권, 남송의 원수(元粹, ?~1214~?)가 지은 『사교의비석(四敎儀備釋)』 2권, 원의 몽윤(蒙潤, 1275~1342)이 지은 『사교의집주(四敎儀集註)』 10권이 『천태사교의』의 3대 주석서로 평가받는다.
한편, 일설에 따르면, 본서는 원래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상권은 천태의 교관 체계를, 하권은 남북의 여러 조사들의 학설을 정리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권은 전하지 않고, 현재는 상권에 해당하는 본서만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