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과 화엄 교학의 핵심 주제들을 문답 형식으로 풀이한 화엄학 개설서
『화엄경문의요결문답』권3 ⓒ京都大學附屬圖書館所藏
문헌 제목 풀이
『대일본속장경』과 『한국불교전서』에는 ‘화엄경문의요결문답’이라는 제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화엄경』의 요결, 즉 『화엄경』의 핵심적 주제를 문답 형식으로 풀이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근년 일본에 소장된 가장 오래된 필사본과 불전 목록 등에는 제명이 ‘화엄문의요결문답’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화엄경』에 국한되지 않고 화엄 교학 전반을 폭넓게 다루고 있으므로, 원래의 제명은 ‘경(經)’자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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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법은 여여(如如)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實相]은 본래 생기지 않으며 지금 없어짐도 없다.
늘어남도 줄어듬도 없고, 있음[有]도 없음[無]도 없으니 있으면서도 없다.
있음은 없음의 있음이고, 없음은 있음의 없음이다.
없음과 있음은 둘이 아니니, 이는 둘이 아니면서 둘이다.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으니, 이는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또한 둘이기도 하고 둘이 아니기도 하며 둘이면서 둘이 아님이 없다.
<항상됨[常]과 항상됨이 없음[無常] 등 모두가 이런 예이다.>
지금 연기법계 중에 본질이 없으면서 본질이니 여여(如如)함으로써 법계의 본질로 삼으며,
연기가 걸림이 없음을 법계의 작용으로 삼는다.
본질도 없고 작용도 없어 작용이 본질이고 본질이 작용이며, 여여함이 연기이고 연기가 여여함이다.
저자
표원(表員, ?~?)
생몰년 미상. 생애나 행적 역시 알려진 바가 없다. 『화엄경문의요결문답』의 찬호(撰號)에 “황룡사(皇龍寺) 석(釋) 표원(表員) 집(集)”이라 기록되어 있어 황룡사 소속 승려였다는 사실 정도만 확인될 뿐, 그 밖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학계에서는 『화엄경문의요결문답』에서 인용되는 문헌들과 서술 형식, 일본에서의 유통 기록 등으로 미루어 8세기 중후반 무렵에 활동한 인물로 추정하며, 사상적으로는 당시 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의상계 화엄이 아니라 법장(法藏)의 학풍에 경도된 원효계 인물로 분류한다. 최근에는 지론학(地論學)이 표원의 학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구성과 내용
현행본은 전체 4권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목록에는 5권본으로 기재된 경우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조권(調卷)의 차이인지 그렇지 않으면 제5권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권1은 ①칠처구회의(七處九會義), ②설경시의(說經時義), ③설경불의(說經佛義), ④육상의(六相義), ⑤수십전유의(數十錢喩義)의 5장, 권2는 ⑥연기의(緣起義), ⑦탐현의(探玄義), ⑧보법의(普法義), ⑨발보리심의(發菩提心義), ⑩실제의(實際義), ⑪여여의(如如義)의 6장, 권3은 ⑫법계의(法界義), ⑬일승의(一乘義)의 2장, 권4는 ⑭분교의(分敎義), ⑮십주의(十住義), ⑯십행의(十行義), ⑰십회향의(十廻向義), ⑱십지의(十地義)의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석명(釋名), 출체(出體), 문답분별(問答分別)의 세 단계로 논의가 전개된다.
내용면에서는 크게 세 층위로 나눌 수 있다. ①「칠처구회의」부터 ③「설경불의」까지의 3장은 『화엄경』 자체를 다루고, ④「육상의」부터 ⑧「보법의」까지의 5장과 ⑩「실제의」부터 ⑭「분교의」까지의 5장은 화엄 교학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한다. ⑨「발보리심」과 ⑮「십주의」부터 ⑱「십지의」까지의 5장은 화엄의 실천론을 다룬다. 다만, 이와 같은 내용적 분류에는 연구자에 따라 다소 시각차가 있기도 하다.
각 장에서 표원은 중국과 신라 승려들의 견해를 두루 인용하면서 표준적인 정설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용 빈도를 보면, 법장이 68회로 압도적이고, 지론학자로 분류되는 정영사 혜원(慧遠)과 름(懍)이 각각 29회, 19회로 그 뒤를 잇는다. 정법사 혜원(慧苑) 20회, 원효 14회, 의상 3회도 비중 있게 인용된다. 법장은 거의 전권에 걸쳐 인용되고 있어, 표원이 법장을 얼마나 깊이 신뢰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동시에 지론학에 대한 높은 관심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 책은 정작 신라와 고려에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일본에서만 유통이 확인된다. 신라와 고려의 화엄학이 의상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사상적 입장을 달리하는 이 책은 국내에서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당시 화엄학이 막 소개되던 일본에서는 이 책의 개설서적 성격이 불교계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졌고, 따라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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