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사원은 암벽을 깎아 만든 건축물로 이루어진 종교적 시설을 가리킨다(그림 1). 인도에서 등장한 석굴사원 형식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으로 전해져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석굴사원은 암벽 일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도심이나 번잡한 곳에서는 멀리 떨어진 자연 속에 위치한다. 조성 방법에서도 부재를 결구하여 수직으로 세우는 일반 건축과는 달리 암벽을 파고 들어가 공간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대표 석굴사원인 석굴암은 토함산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석굴사원의 전형적 입지를 따른다. 형태적으로도 다른 지역의 석굴사원과 유사점을 지녀 석굴사원의 보편적 모습을 일부 채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다른 석굴사원과는 달리 돌을 쌓아 올린 건축이라는 점에서 석굴암은 다른 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자성을 지닌다(그림 2).
석굴사원의 시작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1]인도아대륙은 현재의 인도 공화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를 포함하는 남아시아를 가리킨다. 에서는 기원전부터 유행자(遊行者)들이 기거하기 위해 자연 동굴을 사용했다. 종교 집단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용도에 맞게 암벽을 깎아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성했고, 석굴사원은 인도의 주요 종교건축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도시의 사원과 비교할 때 석굴사원은 자연 속에 위치하여 수행에 적합한 장소로 인식되곤 하지만, 권력자가 발원자로 조성에 참여한 경우가 적지 않아 지배층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기도 한다. 석굴사원은 조각, 벽화 등으로 장식하여 도심의 평지 사찰 못지않은 화려한 모습을 지닌 경우도 많다.
인도아대륙에서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 불교 석굴사원이 활발하게 조성되었다. 대부분은 데칸 고원 서부에 분포되어 있지만, 서북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데칸 지역의 석굴은 기본 공간뿐만 아니라 건축적 요소와 예배 존상, 장식을 모두 조각했다는 점에서 각 석굴이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는 석굴 안의 존상이나 장식은 주로 소조(塑造)와 벽화로 표현되었다.
인도 초기 석굴의 형식을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이티야(chaitya)라고 부르는 예배 공간이다(그림 3). 가장 안쪽에 예배 대상인 스투파를 두고 그 주위를 우요(右繞), 즉 시계방향으로 도는 의례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비하라(vihara)라는 승려의 거주 공간이다(그림 4). 승려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과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대에도 예배 공간과 승방이라는 주요 기능은 유지되었지만, 석굴의 구조와 형태는 한층 복잡하고 다양해졌으며 더 많은 예배 존상과 더 화려한 장식이 표현되었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석굴사원
인도의 석굴사원 형식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동쪽으로 전해졌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의 서역북도(西域北道)를 따라 많은 석굴이 개착되었다. 쿠차 지역의 키질(Kizil) 석굴, 쿰트라(Kumtura) 석굴, 투루판 지역의 토유크(Toyuk) 석굴, 베제클리크(Bëzeklik) 석굴(그림 5)을 대표 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지역의 암질은 조각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석굴을 조성하면서 예배 대상을 조각하기보다는 소조로 만들어 안치하고 내부의 벽 역시 조각보다는 벽화로 장식하는 방식을 택했다(그림 6).
중국에서도 전국에 걸쳐 석굴사원이 개착되었다. 돈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대동(大同) 부근의 운강석굴(雲崗石窟), 낙양(洛陽)의 용문석굴(龍門石窟), 업성(鄴城) 부근의 향당산석굴(響堂山石窟), 쓰촨[四川] 지역의 대족석굴(大足石窟)이 대표적이다. 둔황 막고굴과 같은 경우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처럼 예배 존상을 소조상으로 만들어 안치하고 내부는 벽화로 장식했다(그림 7). 나머지 지역에서는 석굴 안에 예배 존상을 조각하고 벽을 부조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그림 8).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석굴사원의 형식은 지역과 유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초기 석굴 중에는 우요의 공간을 만든 형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인도의 차이티야 형식을 모델로 만든 것으로서 우요 역시 주요한 예배 방식으로 채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굴암, 한국의 석굴사원
한국에서는 조각이 용이하지 않은 화강암이 널리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석굴사원을 개착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석굴사원처럼 번화한 곳에서 떨어진 자연 속에 수행이나 예배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일찍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넓게 본다면 여러 지역에 조성된 마애불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석굴사원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경주 남산 장창곡 불상이 발견된 석실(石室)과 같은 예배 공간이 석굴사원을 조성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그림 9). 군위 삼존불은 비교적 깊이 있는 공간을 암벽을 파서 조성한 것으로 석굴사원에 더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다(그림 10).
석굴암은 암벽을 파서 깊은 공간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조성한 석굴사원이다. 여기에서는 돌을 깎아 건축 부재를 만들고 이를 쌓아 올려 공간을 만들었다. 이처럼 돌을 쌓아 굴과 같은 공간을 만드는 방식은 멀리 간다라 지역의 스와트 붓카라 유적에서 볼 수 있으며, 가까운 사례로는 7~8세기 신라의 횡혈식 석실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에 비해 석굴암은 한층 치밀하게 계획하여 조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 대상인 항마촉지인 불상은 주실의 중앙에 배치된 연화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다(그림 11). 불상과 주위를 둘러싼 벽 사이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주실(主室)과 전실(前室)의 벽에는 다양한 존상과 장식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중심이 되는 공간에 주된 예배 대상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우요를 행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였으며, 내부의 벽면을 조각으로 장식하는 방식은 다른 여러 석굴사원에서 볼 수 있는 요소이다.
그림 11. 석굴암 본존과 주변 공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석굴암의 구조는 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로 이루어져 있다(그림 12). 이러한 공간 구성과 방형 전실은 다른 지역 석굴사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원형 평면에 둥근 천장을 지닌 주실은 드물기에 그 원류를 설명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유사한 구조를 지닌 석굴로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인도의 원형 탑당(塔堂)이다. 이는 평지의 독립 건물뿐만 아니라 석굴로도 조성되었지만, 석굴암과 수백 년의 시차가 있으며 예배 대상도 스투파라는 점에서 석굴암과 다르다. 시기적으로 가까운 예로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Bamiyan) 석굴과 탁트이 루스탐(Takht-i-Rustam) 석굴이 있다. 석굴암과 유사하게 원형 평면에 둥근 천장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지닌다. 더욱이 바미얀의 원형 석굴에서 내부 벽에 감실을 나란히 배치한 방식은 석굴암 주실 상부의 감실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그림 13). 다만 바미얀의 석굴에서도 석굴암처럼 주실 가운데 안치한 예배 대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쿠차 지역 쿰트라 석굴사원에서는 돔 아래 예배대상이 되는 불상을 안치한 구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석굴암과 유사하다. 그런데 쿰트라 석굴은 원형이 아닌 방형의 평면이라는 점에서 석굴암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상의 사항들을 고려할 때, 석굴암의 주실은 하나의 모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채용하여 창의적으로 조합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집필자 : 김혜원(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관련주석
- 주석 1 인도아대륙은 현재의 인도 공화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를 포함하는 남아시아를 가리킨다.
관련기사
-
마애불의 기원마애불의 기원 마애불(磨崖佛)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되는 바위나 절벽에 직접 새겨진 불상이다. 이것은 마애조상(磨崖彫像), 또는 마애석불(磨崖石佛)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친근하고 아름다운 마애불은 단순히 부처의 모습뿐만 아니라, 불보살상, 권속, 연꽃무늬 등 불교와 관련된 여러 상징물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마애불이나 석굴을 조성하는 목적은 부처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고, 공덕을 빌기 위한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보통 마애불이나 석굴사원들은 지리적으로 주요 무역로를 따라 위치하여, 많은 무역상들이 안전한... -
고대 인도 마애조각고대 인도 마애조각의 발전과 전파 고대 인도는 오늘날의 파키스탄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가진 나라였고, 파키스탄의 간다라 지역은 인도 마투라 지역과 함께 처음 불상 조각이 만들어진 곳이다. 이 지역은 아프카니스탄까지 이어지는 교역로를 따라 마애조각이 조성되었다. 불보살상을 암벽에 새긴 마애조각은 서쪽으로는 아프카니스탄 바미얀 석굴에 이르고 있고, 남쪽으로는 스리랑카를 거쳐 인도네시아까지 넓게 분포되어 발전하였다. 특히 서쪽의 바미얀 석굴과 남쪽의 스리랑카 지역 석굴은 초기 인도 석굴 발전과 함께 마애조각의 전파 과정을 보여주...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
-
-
-
-
-
석굴암 구조의 의미, 위에서 옆으로
-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