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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상, 불세계의 수호자들

석굴암 방형 전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장상(神將像)이 있다. 팔부중상(八部衆像),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사천왕상(四天王像)으로 8세기 중엽에서 후반에 유행했던 신장상은 모두 모여 있다. 입구부터 순서대로 여덟 구의 팔부중상, 좀 더 안쪽의 꺾인 곳에는 두 구의 금강역사상, 더 안쪽의 짧은 통로에는 네 구의 사천왕상이 위계에 맞게 서 있다. 이들 신장상은 석굴 입구에 나란히 서서 원형 주실의 불, 보살, 승려들을 굳건히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무리의 설법 청중, 팔부중상
그림 1. 석굴암 전실 좌우 벽면 팔부중상 ⓒ박진호
방형 전실 전방에 배치된 팔부중상은 8구가 한 세트이다(그림 1). 팔부중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교화된 무리를 말한다. 경전에 등장하는 팔부중의 이름은 천(天 Deva), 용(龍 Naga), 야차(夜叉 Yaksa), 건달바(乾闥婆 Gandharva), 아수라(阿修羅 Asura), 가루라(迦樓羅 Garuda), 긴나라(緊那羅 Kinnara), 마후라가(摩睺羅伽 Mahoraga)인데, 문제는 석굴암의 팔부중은 누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덟 구 가운데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는 연구자 간에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즉, 주실 왼쪽의 첫 번째 상이 얼굴이 3개에 팔이 8개인 아수라, 세 번째 상이 사자 껍질을 벗겨 머리에 쓴 건달바, 네 번째 상이 용 모양의 관을 쓰고 왼손에 여의주를 든 용이며, 오른쪽의 세 번째 상이 입에 염주를 문 야차이다(그림 2). 아수라는 인간과 신이 반반 섞인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이며, 건달바는 음악의 신, 용은 인도의 뱀신인 나가(nāga)를 한자로 바꾼 것으로, 보통 다산(多産)의 신으로 숭배된다. 야차는 통상 재물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도상이 분명한 이들 4구는 다른 4구에 비해 조각가의 기량도 뛰어나 뒤에서 이야기할 금강역사상, 사천왕상과 함께 석굴암 창건 당시에 제작했다고 추정한다.
그림 2. 석굴암 팔부중상 중 아수라, 건달바, 용, 야차 얼굴 ⓒ임영애
주실 입구의 수문장, 금강역사상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면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두 구의 금강역사상이 있다(그림 3). 전실 입구 양쪽에 서 있는 금강역사상은 고개는 중앙을 향해 돌렸지만, 몸은 정면향이다. 입구 왼쪽에는 입을 벌린 양상(陽像, 阿形)의 금강역사가, 오른쪽에는 입을 다문 음상(陰像, 吽形)의 금강역사상이 있다. 금강역사상은 원래 인도에서는 단독상으로 조성되었지만, 중국에서 두 구로 쌍을 이루게 됐다. 금강역사상이 쌍이 된 것이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그 명칭도 인도식이 아닌 중국식으로 양상과 음상으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금강역사상은 옆에서 보면 거의 환조에 가까운 높은 부조의 조각이다. 상반신은 나신, 하반신에는 군(裙)이라 불리는 치마를 걸쳤으며, 자연스럽게 조각된 바위 대좌를 딛고 섰다. 좌우의 두 상은 서로 대칭으로 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려 석굴 안으로 침입해 오는 삿된 것들을 물리칠 태세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두 구 모두 올린 팔의 팔꿈치 앞쪽이 잘렸었다. 다행히 입을 벌린 금강역사상의 오른팔은 보수된 후 지금까지 잘 남아 있지만, 음상은 왼팔을 잃었다.
그림 3. 석굴암 주실 입구 금강역사상 ⓒ박진호
한편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석굴암에서 발견된 금강역사상의 머리가 하나 더 있다. 이 머리는 입을 꾹 다문 금강역사상의 것인데, 1914년 일본의 석굴암 해체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당시 머리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팔뚝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왼팔 1점, 손가락을 모두 구부린 왼손 1점도 함께 발견되었다(그림 4). 머리는 1점만 남아 있지만, 함께 발견된 왼팔과 왼손을 고려하면 석굴암 안의 금강역사상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한 쌍을 더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한 쌍의 금강역사상이 버려진 이유에 관해서는 실패작, 보수하는 과정에서 생긴 폐기작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있지만, 연구자 간에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는 않았다.
그림 4. 경주박물관 소장 석굴암출토 금강역사상의 얼굴(左), 왼팔(中), 왼손(右) ⓒ임영애
세간과 불법을 지키는 사천왕상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석굴암의 짧은 통로에 네 구의 사천왕상이 있다. 너비 3.6m 정도의 비교적 좁은 통로에 두 구씩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실과 주실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사천왕상은 광배와 대좌를 제외한 상의 크기만 대략 200cm 내외이다. 이들 네 구는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데, 2구는 안쪽을, 나머지 2구는 바깥쪽을 바라보며 안팎을 지키고 있다(그림 5). 모두 몸에 정교한 갑옷을 걸쳤지만, 머리에 투구는 쓰지 않았다.
그림 5. 석굴암 통로 좌우 벽면 사천왕상 ⓒ국가유산청
사천왕상 가운데 1구는 오른손으로 보탑(寶塔)을 받쳐 들고 있고, 나머지 3구는 긴 칼을 쥐었다. 보탑을 든 상이 북방 다문천(多聞天)이며, 나머지 상은 이 상을 기준으로 방위를 정하면 된다. 북방 다문천이 짧은 통로의 오른편 안쪽에 섰으니, 그 옆에 서 있는 칼을 든 상은 자동으로 동방 지국천(持國天)이 된다. 4구 모두 발 아래에는 ‘생령(生靈)’이 1구씩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흔히 ‘악귀(惡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들은 사악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사천왕을 돕기 위해 발아래에서 상을 받들고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을 악귀라고 부르기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통칭하는 생령이라 하고, 이들을 대좌로 삼았으니 ‘생령좌(生靈座)’라 부르는 것이 옳다. 생령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난쟁이 모습이 가장 흔하다. 석굴암에서는 남방 증장천(增長天)의 생령이 특히 눈길을 끈다. 생령의 왼팔에는 뱀이 감겨 있고, 입으로 그 뱀의 꼬리를 물고 있다(그림 6). 여기서 뱀은 생령에게 역동적인 힘을 보증해 주는 존재이다.
그림 6. 석굴암 사천왕 중 남방 증장천 생령좌 ⓒ임영애 그림 7. 서방 광목천 얼굴 ⓒ임영애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서방 광목천(廣目天)의 얼굴이다(그림 7). 얼굴만 별도로 수리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광목천의 얼굴은 조성 당시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8세기 중엽부터 후반까지, 최소 25년 이상 걸려 40구에 달하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사천왕상의 얼굴이 망가진 치명적인 손상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관련 기록이 없어 언제, 어떤 연유로 얼굴이 파손되었고, 새로 해 넣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원래는 서방 광목천은 정면이 아니라 굴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측면의 얼굴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석굴암의 방형 전실에는 다양한 신장상이 모여 있다. 얼굴이 3개인 아수라, 사자 껍질을 뒤집어쓴 건달바, 주먹을 불끈 쥔 금강역사, 화려한 갑옷의 사천왕상까지 통일기 신라에서 유행하던 신장상을 모두 한곳에 모아 원형 주실의 불·보살상을 지키도록 했다. 이처럼 팔부중, 금강역사, 사천왕을 한자리에 모아 신장의 역할을 맡긴 일은 동아시아에서 매우 드문 특별한 사례이다.
· 집필자 : 임영애(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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