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은 건축 부재 중 하나인 소로(小櫨) 내면에 묵서되어 있다. 소로는 첨차나 살미 사이에 놓여 상부 하중을 아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부재이다. 묵서는 2개의 소로 부재 내면에 각각 나뉘어 적혀 있다. 첫 번째 소로에는 "강희이십칠년시월일개중설화주봉명(康熙二十七年十月日改重設化主捀明)"이라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소로에는 “소로 첨차(小露 忝車)”라 적혀 있다. ‘강희27년’은 1688년(숙종 14)에 해당한다. 기록은 불연 제작 현판과 함께 1688년 수덕사 불사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원문
(1)
康熙二十七年十月日改重設化主捀明
(2)
小露 忝車
관련기사
-
조선시대: 1528년 단청기1937년 수덕사 대웅전 해체·수리공사 중 고려~조선시대에 작성된 다량의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 중에는 1308년에 건물을 지었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단청, 개수, 중수 등 건물의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덕사 대웅전 묵서는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 일지 기록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다. 1937년에 작성된 『1937年 保存修理 工事』 보고서에는 21건의 묵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6건이다. ... -
유리건판: 1937~1940년 수리공사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수덕사 유리건판 사진 중 상당 수를 차지하는 것은 1930년대에 진행된 수덕사 대웅전 수리공사 기록이다. 해당 공사는 1937년 1월부터 1940년 12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이때 수리 공사의 전 과정이 촬영되어 유리건판으로 남아 있다. 또한 수리 공사에 앞서 1934년에는 해체 수리 이전의 대웅전 현황을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기록 작업으로 인해 수덕사 대웅전은 수리 전, 수리 중, 수리 후의 모습과 현재까지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다. 1930년대 대웅전 수리공사 시 촬영한 사진은 정... -
1937~1940년 수리공사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에 걸쳐 시행된 수덕사 대웅전의 수리공사를 통해, 건립연대, 고려시대의 벽화, 가구 구조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수덕사 대웅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이 수리공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朝鮮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保存領)」에 의거하여 ‘보물건조물수덕사대웅전수리계획서(寶物建造物修德寺大雄殿修理計劃書)’의 지침에 따라 시행되었다. 공사 이전 수덕사 대웅전은 구조적으로나 외관상으로나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수덕사 측에서는 기... -
1937~1940년 수리공사: 고부재 묵서와 현판 기록이 기록은 수덕사 수리공사 과정에서 확인된 기년 묵서, 중수 기록 등을 조사한 것이다. 기록에서는 우선 명기를 작성하여 각 기록별로 번호를 부여하고, 간략한 기년 내용과 작성 위치 등을 적어 목록화 하였다. 기록은 지대 원년(至大元年, 1308) 묵서가 있는 각종 부재들과 가정 7년(嘉靖七年, 1528), 건륭 16년(乾隆十六年, 1688), 가경 8년(嘉慶八年, 1803), 가경 9년(嘉慶九年, 1804)의 개채기(改彩記), 중수기(重修記) 등에 대한 조사 내용이다. 특히 지대(至大) 연간의 기년 묵서가 있는 소로(小櫨), ... -
대웅전수덕사 대웅전(大雄殿)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34년인 1308년에 창건된 불전으로 건립연대가 기록된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미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창건 이후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2~1374) 때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 화상이 중수하고, 1528년(중종 23)에는 단청 보수 공사가 있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수덕사도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대웅전 만은 큰 피해 없이 보존되었다. 이후 1688년(숙종 14)과 1751년(... -
조선시대: 1761년 중수기이 기록은 1761년 법당(수덕사 대웅전) 중수문으로, 백지에 묵서로 쓰인 형태로 전한다. 원래는 건축 부재에 묵서되어 있던 것을 종이에 옮겨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건륭 16년에 대웅전 법당을 중수한다’는 것과 이 불사에 참여한 인물을 적고 있다. 기록에는 “건륭십육년신사(乾隆十六年辛巳)”라 적혀 있지만, 건륭 16년은 ‘신미(辛未)’년에 해당하여 연대와 간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건축 부재의 묵서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이십(卄)’을 ‘십(十)’으로 잘못 옮기면서 생긴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기록의 내용이 상세하... -
조선시대: 1803년 풍판 묵서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풍판(風板)에 적혀 있던 묵서로,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동측박풍(東側搏風) 하부의 중앙부(中央部) 위에 묵서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기록은 1937년에 발견된 것으로, 풍판[禪版]은 이 해 공사 때 제거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1803년 수덕사 대웅전 배면 부연 수리와 좌·우 측면 풍판의 신설에 관한 것으로, 대목(大木)으로 참여한 인물과 시주자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 嘉慶八年癸亥三月日德山修德寺成造禪判記 法堂臺間重修幷後面扶椽幷東西邊搏風風遮新重修也 ... -
조선시대: 1804년 오중수·단청기이 기록은 1804년 2월 수덕사 대웅전 5중수와 이듬해인 1805년 6월 단청불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현판이다. 현판에는 “가경9년갑자이월(嘉慶九年甲子二月)”에 법당을 다섯 번째로 중수했다는 내용과 “을축년유월단청(乙丑年六月丹靑)”이라는 간략한 불사 내용이 적혀 있다. 현판 내용의 대부분은 이 불사에 참여한 시주자의 명단으로, 약 50여명의 인명이 묵서되었다. 묵서 말미에는 목수(木手) 찬유(賛有)와 화원(畫員) 석징(釋澄), 박필장(朴畢長) 형제 등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화주질(化主秩), 별좌질(別座秩)에는 이 불사에서...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