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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1308년 4월 17일 묵서

이 기록은 장여(長舌) 바닥에 적혀 있는 묵서이다. 이 묵서가 적힌 부재에 대하여,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자료에는 “진사상(辰巳上) 삼소로첨차(三小累檐遮) 상단에 묵서 있음”이라고 적혀있으며, 임천(林泉, 1908~1965)의 글에서는 ‘중앙(中央) 마루 밑을 받친 장여의 바닥’이라고 하였다. 묵서는 1937년 판독문에 “대동량효가화상 동원천백 대지투중비(大棟梁曉假和尚 同願天白 大指偸中沘)”라 적혀 있지만, 우측 열부터 차례로 읽으면 “대동량 효가 대지투 화상 중비 동원천백(大棟梁 曉假 大指偸 和尚 中沘 同願天白)”으로도 볼 수 있다. 판독 순서의 난해함으로 정확한 판독 및 해석은 어렵지만, ‘대동량(大棟梁)’과 ‘대지유(大指偸)’는 공사를 준비하고 시행하는 역할의 명칭으로 추정된다. ‘동량(棟梁)’은 마룻대와 들보를 칭하는 뜻이지만, 중대한 일을 맡을만한 인재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여기서는 제작을 주도한 사람을 가리킨다. ‘지투(指偸)’는 ‘지유(指諭)’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수덕사 출토 기와 중에도 “대회 지유(大回 指諭)”명이 있는 암막새가 있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유’는 원래 고려시대 무관 보직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건물 계획과 시공 전반을 총괄하는 직책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묵서 중 “지대원년무신(至大元年戊申)”은 원(元) 무종(武宗) 2년인 1308년(충렬왕 복위 10)을 가리킨다. 또한 묵서 말미의 “입주(立柱)”는 ‘기둥을 세운다’는 뜻으로, 1308년 4월 17일에 기둥을 세웠다는 의미이다. 즉 1308년 4월 13일 지정 작업 이후 4일 후인 17일부터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기야마 노부조의 조사자료에 사진과 판독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삼호입주명(三號立柱銘)”이라는 주기가 달려 있다. 한편,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佐賀縣立名護屋城博物館)에 보관 중인 오가와 케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 자료 중에는 부재 하단과 화반 하단 묵서의 조사 기록도 함께 전한다. 부재 하단 묵서는 장여 하단에 쓰여졌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앞서 언급한 입주 기록과 같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묵서에는 앞선 기록과는 다른 “대지투(유)(大指偸(諭))”의 이름과 범자(梵字)가 적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두 번째 화반 하단 묵서는 스기야마 노부조의 조사자료에 ‘四 立柱銘 辰ノ四 花盤下端墨書’라 적혀 있다. 그 내용은 장여 묵서와 같이 ‘지대원년(1308) 갑신 4월17일’의 ‘원북입주(元北立柱)’에 대한 것으로, ‘영중법사(領衆法師) 효가(曉暇)’와 대동량, 대지유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두 기록에 대해서는 사진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조사 기록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1308년 4월 17일 입주기록에는 특히 동량, 지유 등을 비롯한 주요 참여 인물의 이름이 다수 기록되어 있어 당시 대웅전 중수의 규모와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이다.
원문
장여 바닥 ॐ 大棟梁曉假和尚 同願天白 大指偸中沘 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 (재배열 : 필자) ॐ 大棟梁曉假 大指偸 和尚 中沘 同願天白 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 장여 바닥 하단 副指 大指偸◯信 (梵字) 화반 하단 묵서 至大元年甲申四月十七日 元北立柱 領衆法師曉暇 大東梁 天白 英淑 大指兪 中比 同願一戒之祖◯因閑□ 同願韓 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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