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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정조 1년(1776)에 제작된 11m 높이의 대형 불화이다. 제작 10여 년 후 기우제 행사 중 손상되어 더 이상 의식에 쓰이지 않아,[1]남장사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 「남장사괘불신화성기(南長寺掛佛新畫成記)」에 의하면, 이 손상된 괘불도를 대신하여 1788년(정조 12)에 새로운 영산회 괘불도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처음 제작된 괘불도는 손상 이후 의식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보관만 되었으며, 실질적인 법회와 의식 기능은 1788년에 새롭게 제작된 괘불도가 대체하여 수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의 채색과 장황이 온전히 보존되었다. 이로써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원형이 훼손된 다른 동시대 괘불들과 달리 본래 모습을 유지해, 독보적인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 괘불도에는 복장낭·동경·보관함으로 구성된 복장유물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1788년 새로운 괘불 제작 시 재활용된 이 복장유물은, 현존하는 20여 점의 복장낭 중 대형에 속하며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괘불도와 복장유물이 완전하게 함께 전해져 조선시대 불교회화사와 의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남장사 복장물의 특성
1. 복장낭 1) 구조 남장사 복장낭은 상부의 술이 달린 홍색 끈목[結纓子], 중앙부에 자리한 주머니 덮개[낭개, 囊蓋]와 주머니 몸체[낭신, 囊身], 그리고 하단부 장식인 괴불로 구성된다. 상부 끈목은 길이 40~40.5cm로, 불화에 걸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중앙부의 주머니는 홍색 덮개와 청색 주머니로 이루어지는데, 현전하는 복장낭 중 가장 큰 규모로 전체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67.4cm이다. 하단의 괴불은 길이 18cm로 홍색과 청색 비단에 색실로 술을 달아 마감하였다. 2) 형태 주머니 덮개는 위를 향하는 반달형으로, 가운데가 넓고 둥글게 솟아 있으면서 좌우가 좁고 뾰족하게 올라가 삼산형(三山形) 구조를 이룬다. 이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으로서 여래의 삼신을 상징한다. 하단의 괴불은 운보문단(雲寶紋段)[2]구름과 보배를 조합한 무늬. 복을 기원하고 번영을 상징한다.을 이용해 삼각형 모양을 만들고, 끝부분에 색실로 술을 달아 장식성을 높였다. 이 괴불 장식은 전통 복식 양상을 따른 것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도 지닌다. 3) 기록물 복장낭의 중앙에는 실담자(悉曇字)로 '옴', '아', '훔', '람' 네 글자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복장낭 뒷면에는 이금(泥金)[3]금박 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안료. 사경이나 변상화에 많이 쓰이며, 특히 어두운 바탕에 사용하여 독특한 효과를 낸다. 으로 '願針功德元察(원침공덕원찰)'이 쓰여 있고, 주머니 덮개 안쪽에는 '作針元察(작침원찰)'이라는 묵서가 남아 있다. 복장낭 제작으로 쌓은 공덕이 부처님의 가피로 이어지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2. 안립 유물 복장물은 덮개와 주머니 두 부분 모두에 안립되어 있었다. 덮개 안쪽에서는 분책된 상태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경전 8건이, 청색 주머니 안에서는 후령통(喉鈴筒)을 비롯하여 여러 전적(典籍)과 유리를 포함하여 총 31건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그림 2> 남장사 복장낭
자료적 가치
남장사 복장낭의 자료적 가치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보관함과 동경(銅鏡) 등 모든 구성 요소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불화에 매다는 동경이 함께 전하는 사례는 매우 들물어, 남장사를 제외하면 1730년 경의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불도, 1803년 김천 직지사 괘불도 복장낭에서만 확인된다. 둘째, 남장사 복장낭은 현전하는 복장낭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 일반적인 복장낭 안립 유물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유물이 발견된다. 대부분의 불화 복장낭은 크기가 작아 후령통을 감싸는 생지(生紙)와 다리니 1~2장 정도, 혹은 후령통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장사 복장낭에서는 여러 전적과 다라니, 후령통과 유리 등 약 40점에 달하는 유물이 확인되었다. 셋째, 남장사 복장낭은 18세기에 주로 나타난 삼산형 형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삼산형 양식은 남장사 복장낭이 만들어진 약 20년 후인, 1803년 직지사 복장낭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지 않고 꽃 모양과 괴불의 술이 길어지는 화형(花形)으로 바뀐다. 이러한 점에서 남장사 복장낭은 조선후기 복장낭 형식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남장사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 「남장사괘불신화성기(南長寺掛佛新畫成記)」에 의하면, 이 손상된 괘불도를 대신하여 1788년(정조 12)에 새로운 영산회 괘불도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처음 제작된 괘불도는 손상 이후 의식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보관만 되었으며, 실질적인 법회와 의식 기능은 1788년에 새롭게 제작된 괘불도가 대체하여 수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주석 2 구름과 보배를 조합한 무늬. 복을 기원하고 번영을 상징한다.
  • 주석 3 금박 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안료. 사경이나 변상화에 많이 쓰이며, 특히 어두운 바탕에 사용하여 독특한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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