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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고려후기에 제작된 약사여래상으로,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정하고 정제된 조각 양식으로 고려후기 불상 조각의 특징을 잘 드러내어 한국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불상은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2년에 복장유물과 함께 국보로 승격되었다. 특히, 복장유물에는 발원문과 복장 장엄구 등이 포함되어, 당시 발원자의 신분과 사회적 위계, 약사신앙의 다층적 면모, 불교의례의 상징성 등을 고찰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림 1>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주요 복장유물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1958년 발견 당시 작성된 복장유물 목록에는 은합(銀盒), 오보병(五寶甁), 오색사(五色絲), 백동경(白銅鏡) 등이 기록되어 있었으나, 2014년 재조사를 통해 이러한 유물과 상당수의 경전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보존된 복장유물은 총 44건으로, 홍견묵서원문(紅絹墨書願文), 황초폭자(黃綃幅子), 향낭(香囊), 바늘 주머니, 경전류와 각종 직물 조각 등이 대표적이다. 1. 홍견묵서 원문 길이 약 10미터에 달하는 붉은 비단에 묵서로 기록한 발원문으로, 총 1,116명의 시주자 명단이 확인되어 현존하는 고려시대 원문 가운데 최대 규모를 보인다. ‘성불원문(成佛願文)’으로 명명되는 이 발원문의 저자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불설직지심체요절』(약칭 『직지』)을 편찬한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 스님과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고려후기를 대표하는 선사임에도 태고 보우(太古普愚)나 나옹 혜근(懶翁惠勤)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적이 덜 알려진 백운 경한의 생애와 활동을 밝히는 데 이 성불원문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발원문이 지닌 가장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부 시주자가 원문 위에 작은 직물 조각을 덧대어 자신의 이름과 소원을 따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두 살 아동의 장수를 기원하는 사례도 확인되어, 당시 불교 신행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발원문의 시주질에는 왕전(王顓, 훗날 공민왕)을 비롯하여 왕족, 군부인(郡夫人), 무관(武官), 일반 백성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기록되었다. 특히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 같은 몽골식 인명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원(元) 지배하 사회의 생생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2. 은합 관련 직물 후령통 역할을 하는 은합을 감싼 6가지 천으로 그 중 하나는 황초폭자이다. 황색 견으로 만든 황초폭자 외에 미색(견), 옥색(사), 홍색(견), 미색(초), 청색(초), 담홍색(사)로 구성된 이 중 황초폭자 중앙에는 '약사동원(藥師同願)'이라는 글씨가 묵서되어 있고 사방으로 시주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3. 향낭과 바늘 주머니 향낭에는 명주솜과 다양한 향[1]향은 인도에서부터 호신과 방호의 기능을 가진 재료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몸에 지니며 향약이라 불렀다.료가 담겨 있어 불교의식용이나 호신용으로 보인다. 바늘을 담는 주머니 형태의 직물도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인 실용품이나 장식품이라기보다는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번(幡)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고려시대 유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며, 일본 호류지(法隆寺)와 쇼소인(正倉院)에 있는 번과 유사하다. 4. 경전류 『화엄경』 2책, 『묘법연화경』 8책, 『금강반야바라밀경』 1책 등이 발견되었으나 현재 『화엄경』 1책과 『금강반야바라밀경』만 전한다. 『묘법연화경』의 경우 조선시대의 것도 섞여 있어, 조선시대에 재복장물된 것으로 판단된다. 5. 직물 조각류 다양한 색깔과 크기의 비단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간단히 쓴 발원문으로 볼 수 있다. ‘성불원문’의 명단과 일치하며,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시주자들이 ‘성불원문’의 명단 외에 따로 발원을 적은 비단 조각보를 납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_홍견묵서 원문 뒤쪽 천을 덧대어 쓴 시주자명
자료적 가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은 고려후기 불교의례와 사회 배경, 불복장 물목 등을 풍부하게 반영하는 자료이다. 이 복장유물은 불교사, 미술사, 사회사 측면에서 14세기 중반의 역사적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1천명이 넘는 발원자가 참여하는 ‘성불원문’은 고려 후기 원문 가운데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당시 시주자들의 신분과 사회적 배경을 드러내어, 문헌 자료가 부족한 고려사의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이를 찬술한 백운 경한 스님의 구체적인 사상과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 복장유물에 왕실의 최고위층부터 하층민까지 다양한 계층이 시주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고려 후기 신분 체계와 불교 사상의 확산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향은 인도에서부터 호신과 방호의 기능을 가진 재료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몸에 지니며 향약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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