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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초폭자

황초폭자(黃綃幅子)는 그 축자적 의미대로, 삶아서 익히지 않은 황색 명주실로 짠 한 폭의 보자기를 뜻한다. 불교에서 황색은 변하지 않는 것, 가장 귀한 것을 의미한다. 황초폭자는 후령통과 관련된 모든 물목을 안립한 후, 마지막으로 후령통을 감쌀 때 쓰인다. 황초폭자는 일차적으로 후령통을 견고하게 싸기 위한 수단이다. 이와 더불어 황초폭자는 불상의 심장을 의미하는 후령통과 그 외부의 만다라 세계를 장엄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그림 1>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좌상 복장_후령통과 아래 황초폭자
형태와 특징
고려시대 '황폭자(黃幅子)'에는 방위 표시가 일부만 보이나, 조선시대 황초폭자의 표면에는 대부분 묵서(墨書)나 주서(朱書)로 방위를 표기하였다. 오륜종자의 오자(五字) 등 실담자[1]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표기하기 위해 발달한 문자로 6세기경 중국으로 들어온 후 동아시아 세계에 널리 퍼졌다.로 표기한 종자[2] 種子. 밀교에서 우주의 모든 사물을 탄생시킨다고 여기는 글자.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는 주로 실담으로 표기된다.를 통해 방위를 나타내었다. 때로는 東’, ‘南’이나, ‘前’ 등의 위치를 나타내는 한자로 방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일부에서는 방위를 나타내는 글자 외에 진언이나 다라니가 찍혀 있기도 하다. 유점사본 『조상경』(1824년)에는 황초폭자의 길이로 “⽅一尺五寸許也”라고 하여 사방이 약 1척 5촌[3]1척은 약 30cm, 1촌은 약 3cm.정도를 쓴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약 45cm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 유물을 보면 10~20cm의 후령통을 감쌀 정도의 크기로서 기록보다 작은 편이다. 황초폭자는 그 명칭에서 황색을 강조하지만, 황색뿐만 아니라 청색, 적색, 녹색 계열도 쓰였다. 고려시대에는 오색을 조합한 다색 폭자를 쓰기도 하는 등 황초폭자의 색깔이 다양하였으나, 유존하는 조선시대의 황초폭자는 황색을 주로 사용했다. 황초폭자는 대부분 직물로 되어 있으나 종이에 황색을 물들여 사용한 예(1774, 문수사 청련암 지장시왕도 황초폭자도 보인다. 직물의 종류는 대부분 명주가 쓰이고 삼베도 일부 취하였다.
상징적 의미
황초폭자는 단순히 후령통을 싸는 보자기가 아니라, 불상에 불성을 부과하는 후령통과 그 주위를 장엄하는 복장물이다. 황초폭자의 사방과 간방 모퉁이의 범위는 부처님의 위의(威儀)가 온 천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을 내포하며, 황초폭자가 담고 있는 것은 성속(聖俗)이 함께 머무르는 세계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림 2>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_황초폭자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표기하기 위해 발달한 문자로 6세기경 중국으로 들어온 후 동아시아 세계에 널리 퍼졌다.
  • 주석 2 種子. 밀교에서 우주의 모든 사물을 탄생시킨다고 여기는 글자.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는 주로 실담으로 표기된다.
  • 주석 3 1척은 약 30cm, 1촌은 약 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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