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의범(釋門儀範)』(안진호, 1935)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다양한 의례 관련 문헌들을 집대성하여 한국 불교 의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의식집이다. 이 책은 근대 이후 한국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기본 텍스트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도 승가에서 중요한 의례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석문의범』에는 복장의식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수륙재, 예수재 등 대중 참여 재의식에 비해 눈에 띌 만큼 소략하다. 특히, 안진호는 복장의식을 반드시 치를 필요는 없다고 언급하며,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의례의 실질적 의미와 법사의 법력, 그리고 발원문 등 역사적 기록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석문의범』은 복장의식에 대해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석문의범』 「복장연기」수록면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석문의범』의 복장의식 관련 내용
『석문의범』 하권 「18. 신비편」에 덧붙여 복장의식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글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복장연기(腹藏緣起)’로서 복장의식의 주요 행법과 의식의 기원을 다루고, 두 번째 부분은 ‘기(記)’로서 복장의식에 대한 저자 안진호의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복장연기: 복장의식의 주요 행법과 의식의 기원
1) 화취진언(火聚眞言): 복장의식에서 화취진언은 불상이 불덩이와 같은 신성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우는 주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진언을 일곱 번 반복하며 백개자(白芥子)를 던지는 절차도 소개한다.
2) 복장물목: 복장의식에서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물목을 간략히 나열한다. 오경(五鏡), 오병(五甁), 오곡(五穀), 오향(五香), 오약(五藥), 오길상초(五吉祥草), 오공양(五供養), 오륜종자(五輪種子), 오산개(五傘盖) 등을 언급하면서 의식의 준비가 매우 복잡하다고 평가한다.
3) 복장의식의 기원: 복장 의식이 원래 석가모니 당시 불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불상을 세우는 전통은 중국을 거쳐 조선과 일본까지 퍼졌으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복장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복장의식은 조선 중엽 몇몇 스승들이 믿음의 방편으로 창조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한다.
2. 기: 복장의식에 대한 저자 안진호의 개인적인 의견
1) 복장의식의 선택적 필요성: 불상을 사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정성을 다하면 될 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복장의식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2) 복장의식의 핵심 조건: 충분한 계덕(戒德)을 갖춘 증사(證師)가 필요하지만,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법력과 계덕(戒德)이 부족한 승려가 복장의식을 주관하면, 그 의식은 무의미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 불상 조성 기록의 중요성: 복장의식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불상을 제작하게 된 인연과 과정을 명확히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으며, 복장의식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석문의범』소재 복장의식 내용의 특징과 의의
『석문의범』 속 복장의식 기록은 전통 불교의례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의례의 본질적 의미와 수행자의 덕목을 중시하는 실용적 접근을 강조한다. 안진호는 복장의식이 법력과 계덕을 갖춘 이가 주관해야 함을 역설하며, 불필요한 형식주의를 지양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점은 기존의 불상 조상 의례에 대한 신성주의와 엄숙주의와는 매우 대비되는 지점이다. 『석문의범』은 복장의식을 간소화하거나 생략해도 된다는 실용적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오늘날 사찰에서 복장의식이 점안의식에 비해 간략화되거나 생략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림 2> 『석문의범』 「복장연기」와 「기」 수록면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 집필자 : 불교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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