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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경』 이본 양상

조선후기 불교계는 전후(戰後) 복구의 시대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수많은 사찰이 파괴되어, 17세기 이후 이들을 재건하는 불사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퇴락한 사찰의 전각을 중창하고 여러 불구(佛具)를 제작・수리하는 과정에서 불상과 불화 조성도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대규모 중창불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불상과 불화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의궤 절차와 방법을 담은 의식문의 수요는 증대되었고, 이 과정에서 『조상경(造像經)』의 다양한 이본이 간행·유통되었다.
『조상경』 목판본의 양상과 계통
1. 판본의 양상 조선시대에 간행된 목판본 『조상경』의 구성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모든 판본은 「대장일람경 조상품(大藏一覽經 造像品)」과 「제불보살복장단의식(諸佛菩薩腹藏壇儀式)」을 기본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반면 「불설불모반야바라밀다대명관상의궤(佛說佛母般若波羅密多大明觀想儀軌)」(이하 「대명관상의궤」)는 능가사본, 김룡사본, 유점사본에서만 확인된다.
특히 유점사본은 새로운 내용을 대폭 보강하여 이전 판본들과 차별화를 이루었다. 기존의 조상품 14칙을 내용 고증에 따라 15개로 정정했을 뿐만 아니라, 「금강아사리관상의궤(金剛阿闍梨觀想儀軌)」와 「점안문진언」 등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였다. 또한 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 의식 수행에 필요한 도상과 진언의 보충을 확대하여 의식의 정확성과 실용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특히 유점사본은 새로운 내용을 대폭 보강하여 이전 판본들과 차별화를 이루었다. 기존의 조상품 14칙을 내용 고증에 따라 15개로 정정했을 뿐만 아니라, 「금강아사리관상의궤(金剛阿闍梨觀想儀軌)」와 「점안문진언」 등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였다. 또한 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 의식 수행에 필요한 도상과 진언의 보충을 확대하여 의식의 정확성과 실용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2. 판본별 계통 『조상경』의 판본 계통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수록된 의식문의 내용을 기준으로 판본을 구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태서지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전자에 따르면[1]태경 역저(2006), 『조상경』, 서울: 운주사, 29-32쪽. 전면 개판본인 유점사본을 제외하면,「대명관상의궤」가 추가된 능가사, 김룡사본을 같은 계통으로 볼 수 있고, 용천사, 화장사, 개심사본은 또 다른 계통으로 구분한다. 한편, 판식과 서체, 구성을 분석 기준으로 삼는 형태서지학적 관점에서는[2]남권희(2014), 「조상경 판본의 서지적 연구」,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재)불교문화재연구소 편, 『전통 불복장의식 및 점안의식』, 146-147쪽. 능가사, 김룡사본을 용천사본의 후대 번각본으로 본다.[3]개심사본도 추가. 이 연구는 개심사본이 확인되기 이전의 연구이므로 개심사본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해당 관점에서 보면 개심사본도 용천사본에서 이어져 내려온 계통으로 볼 수 있다. 판식과 서체가 같고 구성만 다른 이들의 관계는 같은 계통이며, 첨가된 구성은 별도의 저본을 수용한 결과로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장사본의 경우 글자의 이각이 다수 확인되어 다른 계통의 저본에서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상경』 필사본의 양상과 특징
『조상경』의 필사본은 횡성 봉복사 천진암과 담양 용화사, 부산 범어사, 동국대 도서관, 합천 해인사 소장본 등이 있다. 이들 필사본은 대체로 용천사본이나 유점사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담양 용화사의 두 필사본을 주목할 만하다. 용화사의 필사본들은 의식을 집전하는 아시리나 법사가 의례를 쉽게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실제적인 보충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유점사본에서 한층 발전된 새로운 형태의 『조상경』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는 항목을 달리하여 설명하도록 하고, 다음에서는 필사본의 초기 본인 해인사, 천진암본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한다. 1. 해인사 소장본(1884년) 해인사 소장본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판본들과 달리 「대장일람경 조상품」이 수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권수제는 성상소화복장의(聖像塑畫腹藏儀)로, 그 아래 실린 「제물예비」 항목에서 복장의식의 준비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소장본은 유점사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으면서, 유점사본 대비 37곳에 걸쳐 내용이 증보되었으며, 후령통 안립 순서도 독자적인 체계를 보여준다. 이는 유점사본을 저본으로 하면서도 해인사에서 고유하게 전승되어 오던 의식 체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 천진암 소장본(1888년) 천진암 소장본은 1888년 6월 16일 횡성의 덕고산 천진암에서 필사되었다. 이 필사본은 전반적으로 용천사본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나, 용천사본에서 누락된 「복장제물해석분제이과설(腹藏諸物解釋分齊二科說)」과 밀교 도상 8가지를 유점사본에서 보충하여 수록하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점필방' 항목에서 용천사계열 판본에 있던 한글이 생략된 반면, '생반삼분'에 대한 설명은 유점사본보다 용천사본의 상세한 내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상경』 이본의 전개와 의미
『조상경』의 여러 이본은 의식이 실제 행해지는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더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다. 각 사찰의 의식 전통과 실천 방식이 반영되면서 이본의 수는 점차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의식문의 기본 체제는 유지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오탈자와 내용 오류가 발생하여 불복장 의식의 정확한 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점사본은 『조상경』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고증하여 전면적인 개간을 실시한 판본이었다. 유점사본은 당시 유통되던 『조상경』과 다양한 조상 의식문을 집대성하고 오류를 바로잡은 선본(善本)으로, 이후 다양한 필사본의 저본이 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복장의식의 기준으로 전승되고 있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태경 역저(2006), 『조상경』, 서울: 운주사, 29-32쪽.
  • 주석 2 남권희(2014), 「조상경 판본의 서지적 연구」,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재)불교문화재연구소 편, 『전통 불복장의식 및 점안의식』, 146-147쪽.
  • 주석 3 개심사본도 추가. 이 연구는 개심사본이 확인되기 이전의 연구이므로 개심사본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해당 관점에서 보면 개심사본도 용천사본에서 이어져 내려온 계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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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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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천사본 『조상경』권수제면 (원각사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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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가사본『조상경』 앞표지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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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심사본『조상경』 앞표지 (대성사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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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룡사본『조상경』앞표지 (대성암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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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점사본 『조상경』오개자 수록면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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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가사본『조상경』 「대명관상의례」 수록면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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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룡사본『조상경』 「불설불모반야바라밀다대명관상의궤」 수록면 (대성암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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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 필사본 『조상경』 권수제 「성상소화복장의」 수록면 (해인사 성보박물관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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