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의 복장의식은 14세기 이래 확립되어 전승되었지만 그 사자상승(師資相承)의 계통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16세기 후반 이래 복장의식의 의궤 『조상경(造像經)』이 간행되었고, 19세기 초반 화악지탁(華嶽知濯)에 의해 유점사(楡岾寺)판 『조상경』이 간행 유포되었다. 그 이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복장의식의 전통이 장성 백양사(白羊寺)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 근현대 한국불교의 대선지식으로 추앙받는 묵담성우(黙潭聲祐, 1896-1981)가 있다.
묵담성우는 금해관영(錦海瓘英, 1856-1937)의 복장의식 전통을 이어받았고, 금해관영은 화담법린(1843-1902)으로부터 의맥(儀脈)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묵담성우는 이러한 금해관영의 의맥을 계승하고 있는데, 의맥으로는 사사받은 스승이 된다.
묵담성우는 11세에 금해관영의 권유로 백양사에 입산한다. 금해관영은 복장의식의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는 『복장경(腹藏經)』·『복장진언(腹藏眞言)』·『점안의식(點眼儀式)』 등의 필사자로도 알려져 있다. 묵담성우는 출가 후 백양사와 내장사(內藏寺) 등지에서 사교(四敎)와 대교(大敎)를 익히고, 1921년에는 백양사 청류암(淸流庵, 현재 관음암)에서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수학하였으며, 당시 청류암에는 묵담성우의 출가를 권한 금해관영이 주석하고 있었다.
1937년 금해관영이 열반한 이후에 묵담성우는 금해관영의 복장의식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왔다. 묵담성우는 1970년 태고종 창종 전까지 청류암과 관련을 맺게 되며, 1956년 백양사 포교당으로 담양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한다. 이로인해 금해관영의 복장의식을 잇게 된 묵담성우의 복장의식 관련 자료와 전통들이 담양 용화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2017년 6월에서 8월 중 3차례에 걸친 묵담유물관 소장 문헌자료 조사에 의하면 복장의식과 관련되는 약 10여종의 자료가 발견되었다. 그 문헌자료로 유점사본 『조상경』, 필사본 『복장경(腹藏經)』, 금해관영의 필사본인 『복장진언(腹藏眞言)』·『점안작법(點眼作法)』·『삼증사점필법(三證師點筆法)』, 묵담성우의 잡기장 『금수사불상복장소입기(金水寺佛像腹藏所入記)』, 『불상조성내역(佛像造成內譯)』, 『백양사사천왕신조상시법문초(白羊寺四天王新造像時法門抄)』, 『불상조성공덕(佛像造成功德)』, 『불상봉안식법어(佛像奉安式法語)』 등이 있다.
묵담성우의 대표적인 불복장(佛腹藏) 이력은 1938년 김제 금산사(金山寺) 미륵대불, 1943년 보은 법주사(法住寺) 불상의 복장물을 조성하는 등 25회에 걸쳐 복장물을 조성하고 그 의식을 행하였다. 이러한 묵담성우의 불복장의식은 그의 손상좌인 도월수진(道月守眞 1948-현재)에게 이어졌다. 도월수진은 17세에 담양 용화사에서 득도하여 묵담성우의 손상좌가 되었고, 훗날 불복장 의맥을 이었다.
하지만 『불복장의식 현황조사보고서』(2012)[1]불교문화재연구소(2012), 『불복장의식 현황조사보고서』, 서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80~101쪽.에는 여타의 전수자들도 묵담성우의 그것을 잇고 있다고 밝혀놓고 있다. 전수자 다섯 분은 도월수진을 비롯하여 태허무관(太虛無觀)·보륜성오(普輪性寤)·현함도성(現含道成)·원조경암(圓照鏡岩)이다. 다섯 전수자가 밝힌 사자상승의 특징은 백양사의 묵담성우가 중심이 되고 해인사에 주석했던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도월수진 스님은 2009년에 ‘(사)한국불교 전통불복장 작법보존회’를 결성하고 2010년에 담양 문화회관에서 시연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이후 대한불교 조계종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를 발족하여 2014년 7월에 시연회를 행한 바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4월에 문화재청이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불복장작법 보존회”를 불복장 보존 단체로서 국가무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하여 불교계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불교문화재연구소(2012), 『불복장의식 현황조사보고서』, 서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8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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