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인 17세기 이후에는 집중적으로 복장(腹藏)의 안립이 이루어진다. 특히 1630-1660년 사이에 많이 이루어졌다. 이는 정치·사회·경제 등 조선의 모든 기반을 무너뜨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불교계의 재건 불사와 맥을 같이 한다. 사찰의 재건은 주불전(主佛殿)을 시작으로 부수 전각들의 건립이 함께 이루어졌으며, 전쟁 시 사망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천도재와 같은 불교의식이 성행하면서 여러 의식집이 새롭게 간행되었다. 이러한 불교계의 동향은 불보살상을 조성하는 것 이외에도 괘불을 비롯한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 다양한 불교 존상들의 조성으로 이어졌다. 이로인하여 현존하는 복장은 이 시기에 조성된 것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전 시기에 조성된 불교조각의 상당수도 재복장되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와 조선전기 불교조각이 대부분 불보살상에 집중되어 있어 당시 다른 존상들의 복장안립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에 반해 17세기 이후 불교조각은 다양화되었지만 복장의 안립은 주불전에 봉안된 불보살상과 동일한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예로 상원사(上院寺) 영산전(靈山殿)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미륵보살좌상, 그리고 명부전(冥府殿)에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인왕상 등을 함께 봉안하였는데, 존상의 종류와 봉안처에 관계없이 발원문(發願文)과 후령통(喉鈴筒)을 중심으로 한 단순화된 물목구성과 안립체계가 나타난다.
1726년 예산 삼길암(三吉庵)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서산 해월사(海月寺)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같이 함께 조성하여 다른 사찰에 각각 봉안하였지만 복장은 일부 재료의 차이가 있을 뿐 형식은 거의 동일하다. 또한 해남 대흥사(大興寺) 석가여래삼불좌상의 경우 본존 목조석가여래좌상은 17세기 후반, 좌우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은 1612년 조성된 소조상으로 봉안시기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복장의 구성은 유사하다. 이는 조선후기 복장이 후령통을 중심으로 한 형식으로 완벽하게 정형화되어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복장의 구성은 17세기 이후 복장을 규정하는 특징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발원문과 후령통을 중심으로 한 복장의 체계화는 『조상경(造像經)』의 정형화에 따른 영향이다. 1824년 유점사(楡岾寺)판에서 이전의 판본[1]유점사판 이전의 『조상경』 판본은 1575년 담양 용천사(龍泉寺), 1697년 흥양 능가사(楞伽寺), 1720년 용강 화장사(華藏寺), 1746년 상주 김룡사(金龍寺)에서 간행한 4종이 알려져 있다. 과 다른 체계와 설명을 부과하여 차이가 있지만 실제 불교조각에 안립되는 물목과 안립형식은 유점사판과 유사하다. 근본적으로 복장은 「복장소입제색(腹藏所入諸色)」에 기록된 물목을 「묘길상대교왕경(妙吉祥大敎王經)」에 의거하여 안립한다. 조선후기 복장이 일률적이면서도 정형화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은 『조상경』에 의거한 불교의례로써 형식이 규정화되었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조상경』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불교에서 불복장의 의궤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조상경』이 완전한 하나의 수행체계를 가진 경전으로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조선후기 발원문은 불상의 조성 이유 외에도 조성 사찰, 봉안 존상과 전각, 시기 등의 조성과 복장에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거나 왕, 왕비, 세자의 무병장수 기원, 그리고 모두 성불에 이르기를 바라는 회향문(廻向文)을 기록하였다. 또한 연화질(緣化秩)과 본사질(本寺秩), 시주질(施主秩) 등 불교조각을 조성·봉안하는 소임자와 물질적 지원을 한 시주자를 중심으로 한 체계를 갖추었다. 소임과 시주에 대한 기록은 이미 16세기부터 나타나고 있어 조선후기 발원문의 형식을 마련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7세기 이후 발원문은 이전 시기보다 좀더 간략화되고 정형화되었다.
발원문과 후령통 이외에 대부분의 물목도 왕실, 사대부, 일반 민중 등 참여한 시주자의 지위에 따라 물목의 질과 종류에 차이가 나타난다. 대체적으로 경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중심이 되었으며, 진언은 「일체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一切如來全身舍利寶篋眞言)」이 중심이 되어 있고 다양한 진언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 진언이나 다라니에 국한되어 간략화되는 경향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의궤가 전형화되었기 때문에 수행을 강조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조선불교의 의례를 읽어내는 옮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 후령통의 형태는 합형도 존재하지만 후혈을 갖춘 원통형으로 정착되었다. 이와 더불어 방형의 직물을 말아 감아 오색사(五色絲)로 결합한 오보병(五寶甁)의 형식으로 고착화되면서 후령통과 오보병의 형태가 일치하게 된다. 직물이나 종이로 만든 금강저(金剛杵), 번(幡), 산개(傘蓋)가 오보병에 안립되고 사방주(四方呪)와 오방경(五方鏡)이 후령통의 외부 방위를 표시하는 등 『조상경』의 내용과 동일한 형식으로 정착되었으며, 방위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오륜종자(五輪種子)와 진심종자(眞心種子)는 조선전기와 마찬가지로 오자(五字)를 중심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형식의 복장은 불교불화와 조각의 종류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이루어졌으며, 형식 또한 일률적인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에는 『조상경』에 의한 불교의례로써 완전한 형태로 정착되어 정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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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1 유점사판 이전의 『조상경』 판본은 1575년 담양 용천사(龍泉寺), 1697년 흥양 능가사(楞伽寺), 1720년 용강 화장사(華藏寺), 1746년 상주 김룡사(金龍寺)에서 간행한 4종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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