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복장은 고려시대 복장에서 변화하여 조선시대 복장의 전형을 마련하는 시기로 가장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조선전기부터 왕실과 사찰에서 많은 경전과 의식집이 간행되었는데 그 중 『조상경(造像經)』도 정비되면서 이에 대한 의례의식이 일반화되어 보편화된 형식에 따라 복장물이 납입되었다. 이는 한국 복장의 독자성을 확립한 고려시대 복장의 형식을 계승하면서 변천된 것이다.
『조상경』은 지금까지 모두 5종 이상의 판본[1]기존에는 1575년 담양 용천사(龍泉寺), 1697년 흥양 능가사(楞伽寺), 1720년 용강 화장사(華藏寺), 1746년 상주 김룡사(金龍寺), 1824년 고성 유점사(楡岾寺)에서 간행한 5종의 목판본이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집성팀의 조사로 1740년에 함흥 개심사(開心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추가로 알려졌다. 『조상경』에는 상기 목판본 외에도 다수의 필사본이 현존한다.이 확인된다. 그중 조선전기에 해당하는 1575년 용천사(龍泉寺)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에 판각된 것이다. 특히 용천사판은 1824년 유점사판이 간행되기 이전까지 모든 『조상경』의 기준이 되었으며, 내용상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복장의 특징이 혼합되고 있다.
이 용천사판 『조상경』이 간행되기 이전에도 고려시대 이래로 끊임없이 복장은 이루어졌다. 특히 고려시대 물목구성을 뒷받침하는 「미타복장입물색기(彌陀腹藏入物色記)」에서 오향(五香), 오약(五藥), 오보(五寶), 오황(五黃), 오색백(五色帛), 오색사(五色絲) 등은 용천사판을 비롯한 모든 『조상경』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복장물이 나타나는 이유는 자현(慈賢)스님이 번역한 『묘길상평등비밀최상관문대교왕경』(1062-1063년경)을 이른 시기부터 조상의 한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전기는 고려시대와 달리 『조상경』 등을 기반으로 물목의 구성이 변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합의 외부에 연꽃 형태를 조합한 고려시대의 팔엽통(八葉筒)이 사라지고 뚜껑에 후혈을 갖춘 원통형의 후령통(喉鈴筒)으로 변화하면서 팔엽은 독립된 물목으로 분화한다. 후령통의 뚜껑을 팔엽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팔엽은 입체형태와 평면형태의 팔엽연화로 개체화되어 후령통 내부에 안립되며, 조선후기 팔엽개(八葉蓋)로 정착하는데 전기를 마련하였다.
조선전기 가장 많은 변화가 확인되는 물목은 ‘오보병(五寶甁)’이다.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오보병과 같이 오색사로 보병을 결합한 가장 일반적인 형식, 후령통과 오보병의 안립여부와 관계없이 물목명을 기록한 한지에 해당 물목을 싸고 있거나 직물이나 한지를 이용하여 소량의 물목만을 포장하는 형식, 오보병 자체가 호리병 형태로 나타나는 등 다른 시기에 비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오방으로 구성되어 후령통에 안립되는 오보병이 아닌 물목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복장에서 방위를 구성하는 중심 물목이었던 오륜종자(五輪種子)와 진심종자(眞心種子)는 대부분 오자 중심으로 간략화되었으며, 황초폭자(黃綃幅子)는 조선전기부터 이미 단일화되었다. 사방주(四方呪)와 오방경(五方鏡)이 방위를 구성하는 물목으로 등장하고 있으나 오방경이 후령통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한 번과 엽 형태의 직물이 등장하는데, 오보병과 별개의 물목으로 안립되었다.[2]이선용(2018), 「한국 불교복장의 구성과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72-274쪽.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조선전기는고려시대 복장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물목의 구성에 변화가 이루어져 이 시기만의 독특한 복장형식을 마련하였고, 또한 조선후기 발원문과 후령통 중심의 단일화되고, 획일화된 안립형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목에 나타나는 현상은 900년대 후반에 활동하는 자현스님이 번역한 『묘길상평등비밀최상관문대교왕경』을 복장의 의궤로 차용하여 전거로 삼았다는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불복장의 연원은 『다라니집경』과 『대일경』에서 출발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조선불교의 관상수행법을 염두에 두면, 팔엽통(八葉筒)에서 팔엽개(八葉蓋)의 변화는 물목의 변화가 아니라 수행법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반야의 관상의궤에서 나타나는 수행공덕을 표현하는 방법이 변화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불교의 독특한 수행법의 한 현상이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기존에는 1575년 담양 용천사(龍泉寺), 1697년 흥양 능가사(楞伽寺), 1720년 용강 화장사(華藏寺), 1746년 상주 김룡사(金龍寺), 1824년 고성 유점사(楡岾寺)에서 간행한 5종의 목판본이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집성팀의 조사로 1740년에 함흥 개심사(開心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추가로 알려졌다. 『조상경』에는 상기 목판본 외에도 다수의 필사본이 현존한다.
- 주석 2 이선용(2018), 「한국 불교복장의 구성과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72-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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