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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복장(腹藏)’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며 구체적인 복장물목과 납입정황 등을 기록한 문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문헌기록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낙산관음복장수보문병송(洛山觀音腹藏修補文幷頌)」과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민지(閔漬, 1248-1326)의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 그리고 『양촌집(陽村集)』에 실린 권근(權近, 1352-1409)의 「석왕사당주비로자나좌우보처문수보현복장발원문(釋王寺堂主毗盧遮那左右補處文殊普賢腹藏發願文)」 등으로 모두 13-14세기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규보의 「낙산관음복장수보문병송」에는, 낙산사(洛山寺)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의 ‘복장(腹藏)’을 오랑캐가 훔쳐가려고 했다는 것과 ‘복중지진장(腹中之珍藏)’이라고 하여 ‘부처의 배 안에 있는 진귀한 보물’이라는 복장의 전체 용어와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복장물목에 근거하여 2개의 심원경(心圓鏡)과 오향(五香)·오약(五藥)·색사(色絲)·비단주머니[錦囊] 등 여러 물건을 다시 납입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민지의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에는, 무외국통(無畏國統) 정오(丁午)의 주도로 국청사(國淸寺) 금당의 주존으로 봉안할 석가삼존상을 조성할 때, 복장에 안치하게 될 사리를 얻게 된 과정과 그 영이함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여기서 불상의 몸 안에 물건을 넣는 것은 ‘복장(腹藏)’, 들어가는 물목은 ‘복장제물(腹藏諸物)’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정오가 지었다는 게송에는 사리를 수습하여 팔엽통(八葉筒)에 나누어 담아 삼존의 배 속에 넣어 안치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권근의 「석왕사당주비노자나좌우보처문수보현복장발원문」에는 ‘외식이 장엄하니 중장 또한 근엄해야 하므로 발원하는 생각을 글로 적어 복중에 넣는다(外餙旣嚴 中藏亦謹 爰書願意 實于腹中)’라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내부에 안치하고 장엄하는 행위를 ‘중장(中藏)’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즉 불상의 외형과 더불어 내부 역시 잘 갖춰 근엄한 모습으로 장엄해야 한다는 복장의 중요성을 밝힌 점에서 주목되는 내용이다. 이규보와 민지의 기록은 고려후기 불복장물이 심원경, 오향, 오약, 색사, 금낭, 사리와 이상의 물목들을 봉안한 팔엽통 등으로 구성됐음을 알려준다. 두 사람이 열거한 물목은 유존하는 고려후기 불복장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문헌기록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불상에서 실제 복장물이 발견된 사례, 또한 10여구 [1]고려시대 불상에서 실제 복장물이 발견된 사례는 1274년 이전에 조성된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1301년),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복장물(1302년), 일본 관음사 소장 금동보살좌상(1330년),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1346년),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1346년),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1362년),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88년 중수),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89년 개금), 통영 안정사 금동여래좌상(고려후기), 합천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고려후기) 등이 있다. 존재 한다. 그 중에 1346년에 조성된 서산 문수사(文殊寺) 금동여래좌상의 경우 목에는 후령(喉鈴), 가슴에는 목합(木盒), 복부에는 발원문과 각종 문서류, 맨 아래에는 생초류(生綃類)를 비롯해 주변의 빈 공간을 다라니 뭉치로 메웠다. 목합에는 오보병, 사리통, 수정(심주)이 들어있는데, 오보병은 천으로 만들어 오곡·오향·오보·오약 등을 싸놓았으며 사리통에는 사리를 상징하는 구슬을 넣었다. 목합 외부에는 팔엽의 연잎을, 상부에는 연자주서를 그렸다. 또한 복장물인 「미타복장입물색기(彌陀腹藏入物色記)」에는 오향(五香; 청목향·곽향·침향·유향·정향), 오약(五藥; 부자·하자·인삼·감초·계심), 오보(五寶; 유리·호박·진주·생금·생은), 오황(五黃; 대황·소황·우황·자황·웅황), 오곡(五穀), 심경(心鏡), 심주(心珠), 후령(喉鈴), 오색백(五色帛), 오색사(五色絲), 황폭자(黃幅子), 사리동(舍利同), 팔엽동(八葉同)의 세부 물목을 나열하였으며, 그 외 복장과 관련한 물목이 확인된다. 고려후기 조성된 통영 안정사(安靜寺) 금동여래좌상의 경우는 가슴 맨 위에 비단으로 싼 후령이 있고, 다라니로 싼 목합(가슴부분), 천(가슴과 배), 발원문, 다라니 뭉치 등이 차례로 안치되어 있었다. 목합에는 천으로 만든 황색·청색·주황색·백색·남색의 오보병과, 구슬(심주)·벽옥통(사리함)이 들어있고, 뚜껑을 열었을 때 맨 위에 중방원경(中方圓鏡)과 색사가 놓여 있었다. 목합 내벽에는 색깔과 모양으로 다섯 방위를 나타낸 오륜종자(五輪種子)를 붙이고, 외벽에는 팔엽의 연잎을 그리고 사방주(四方呪)를 범자로 적었다. 비교적 후기에 발견된 사례를 중심으로 고려시대 불복장물의 일반적인 구성을 정리해 볼 때, 대개 목 쪽에 동제방울인 후령이 오고, 가슴 부분에 나무나 은으로 만든 합(盒)을 안치하며, 배와 다리 부분에 발원문·시주질을 비롯한 각종 경전과, 다라니·직물류 등으로 이루어졌다. 근래에는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상에서 복장물이 발견되어 9세기에 조성된 목불임이 밝혀졌는데, 당시 물목은 고려후기와 1490년에 납입한 것이지만 묵서의 제작연대와 불상 내부의 빈 공간으로 보아 조성 당시에 다른 복장물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고려 중·후기에는 불복장 전통과 납입물목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고려후기에 이르면 주요 복장물의 봉안 순서와 위치가 어느 정도 정립되었으며, 또한 팔엽통의 형태, 물목의 납입방식, 사용된 진언의 종류와 위치도 일정한 정도까지 정형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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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1 고려시대 불상에서 실제 복장물이 발견된 사례는 1274년 이전에 조성된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1301년),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복장물(1302년), 일본 관음사 소장 금동보살좌상(1330년),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1346년),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1346년),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1362년),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88년 중수),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89년 개금), 통영 안정사 금동여래좌상(고려후기), 합천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고려후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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