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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의 복장 양상은 현존하는 기록을 통해 볼 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다.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83]의 『정창원문서(正倉院文書)』 「조석산사소공문안창(造石山寺所公文案帳)」에는 천평보자(天平寶字) 5년(761)에 석산사(石山寺)에서 소상(塑像)인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의 조성을 시작하여 762년 2월 15일에 사리를 복장으로 안립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속일본기(續日本記)』에는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766) 대화우사(大和隅寺)의 비사문천상(毘沙門天像)에 봉안할 사리를 법화사(法華寺)에 봉청(奉請)하였다는 기사가 쓰여 있다. 불사리와 동일한 개념으로 721년 나라 흥복사(興福寺) 중금당(中金堂) 본존과 장육석가여래상의 백호에 작은 은으로 제작한 석가여래상입상을 안립하기도 하였다. 나라 전향사(傳香寺) 지장보살상(1228)의 경우 사리와 약사여래좌상, 그리고 여러 경전 등을 안립하였는데, 그 의미를 「비구니묘법원문(比丘尼妙法願文)」에 삼보(三寶)로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복장도 사리신앙이 중심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의 복장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지만 나라시대에는 불상(佛像), 경(鏡), 장식구(裝飾具), 동령(銅鈴), 동전 등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어 당시에는 복장의 형식이 구체적으로 정형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후대에 보수를 시행하면서 재복장하여 시대가 중첩되고 있다. 일본도 상의 조성뿐만 아니라 수리 시에도 복장을 안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의식절차였음을 알 수 있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 복장의 변화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공해(空海)에 의해 건립된 동사(東寺)이다. 『동보기(東寶記)』에 의하면, 운경(運慶)에 의해 1197년 수리가 이루어질 당시 사리, 명향(名香), 진언 등을 기록한 종이편 등이 작은 통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특히 진언들은 법신게(法身偈), 광명진언(光明眞言), 오자(五字) 문수진언(文殊眞言), 오대종자(五代種子) 등의 범자로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공해에 의해 기존의 불교와 다른 성격의 밀교가 일본에 유입되었고 이 영향이 복장까지 미쳐 향과 곡식, 그리고 진언 등 밀교의식과 관련된 물목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과 일본의 오장설은 선무외(善無畏, 637-735)의 밀교사상과 관련이 깊다. 선무외가 번역한 『삼종실지파지옥전업장출삼계비밀다라니법』에는 이미 금강부의 종자진언에 오장육부를 나누고 있다. 선무외의 오륜탑은 종자진언의 상징인 도형으로 오륜탑을 만든다. 이를 받아들인 것이 일본 오륜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장육부를 안립하는 복장 형식은 청량사(清涼寺) 석가여래입상(985)의 조성과 복장을 중국 개원사(開元寺)에서 시행하는데 일본의 승려 조연(奝然)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일본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청량사 석가여래입상이 본 사찰에 봉안(987)된 이후부터 헤이안시대까지 오장육부의 봉안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불교 관련 조각상 중 오장육부를 복장으로 안립한 가장 이른 예는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에 제작된 지은원(知恩院) 소장 선도대사상(善導大師像)이다. 오장육부는 발견 당시 상당 부분 훼손되어 5개로 분리되어 전체적인 형태와 구조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또한 청량사 석가여래입상과 같이 기록과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으나 긴 끈은 창자로, 주머니 형태들은 모두 다른 장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선도대사입상은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오장육부를 복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7]까지 확인되는 몇 개의 사례 중 대표적인 복장이라 하겠다. 오장육부 이외에 가마쿠라시대 복장에서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물목은 바로 사리기이다. 헤이안시대에도 도쿄 성호원(聖護院) 지증대사상(智証大師像)과 교토 교왕호국사(敎王護國寺) 천수관음상에서도 사리기가 발견되었다. 이에 반해 가마쿠라시대 복장에서 발견되는 사리기는 밀교의 오륜(五輪)을 형상화한 독특한 조형을 갖추고 있어 차이가 있으며, 이를 오륜탑(五輪塔)이라 한다. 오륜탑과 관련하여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가마쿠라시대 이루어진 동대사(東大寺)의 중흥 불사이다. 당시 동대사의 복원은 중원(重源)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대불전(大佛殿)의 대불(大佛)은 1180년 훼손된 이후 1185년 새롭게 두부(頭部)를 조성하였다. 구조겸실(九条兼實)의 일기『‘옥엽(玉葉)’』1185년 4월 27일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리 3과를 오색오륜탑(五色五輪塔)에 봉안하고 원문과 함께 오색의 금대(錦袋)에 넣어 동대사 대불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오륜탑의 용도가 사리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원의 오륜탑은 제호사(醍醐寺)의 사리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동대사속요록(東大寺續要錄)』 「공양편(供養編)」과 「제호잡사기(醍醐雜事記)」에 의하면, 중원이 동대사의 중흥 불사 시 사리를 봉안하는데, 이 사리를 제호사의 승려 승현(勝賢)이 상제호(上醍醐)로 운반하여 서원공양(誓願供養)을 100일간 시행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제호사신요록(醍醐寺新要錄)』「원광원편(円光院編)」에는 원광원의 삼각오륜탑(三角五輪塔)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제호사의 삼각오륜탑의 형태는 비록 후대의 기록이지만 군마(群馬) 자안사(慈眼寺)에 소장된 『동장대사(東長大事)』의 「제호사삼보원본존도(醍醐寺三寶院本尊圖)」에서 동일하게 확인된다. 일본의 오륜탑은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의 오대(五大)를 방형(方形)·원형(圓形)·삼각형(三角形)·반월형(半月形)·원형(圓形)의 오륜형(五輪形)으로 구성하였으며, 각각의 오륜에는 오자(五字)를 기록한다. 이러한 오륜탑의 특징은 『존승불정수유가법궤의(尊勝佛頂修瑜伽法軌儀)』에 기초한다. 제호사는 진언종의 본산이며, 공해(空海)에 의해 창립된 종파이다. 이를 통해 8세기 중국에서 유행한 밀교를 전교받은 공해와 관련 인물들에 의해 진언밀교의 영향으로 오륜탑의 사상과 사리신앙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오륜·오대·오자로 구성된 중원의 삼각오륜탑은 제호사의 영향에 의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1336-1392) 이후 복장은 사리포(舍利包)와 원문, 경전과 다라니 등이 발견되었지만 이전 시기에 비해 종류가 축소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주로 헤이안시대와 가마쿠라시대의 조각을 보수하면서 복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경우에도 상당수가 경전, 다라니, 기록에 국한된다. 일본의 복장은 오륜탑, 진언과 다라니 등 밀교 문화의 영향에 의한 특유의 독자성을 후대까지 지속하면서 중국이나 한국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1]이선용(2018), 「한국 불교복장의 구성과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32-40쪽.
· 집필자 : 불교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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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1 이선용(2018), 「한국 불교복장의 구성과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3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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