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의식(腹藏儀式)의 성립 배경은 대승불교가 시작되는 1세기 후반 경이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불상(佛像) 조성(造成)이 활발해지면서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보다 구체적인 의식이 요구되었다. 특히 3세기 간다라 불상에서는 정계(頂髻)에 홈을 두어 사리(舍利)를 봉안하고자 했던 흔적들이 발견된다. 실제 『고승전(高僧傳)』, 『집신주삼보감통록(集神州三寶感通錄)』, 『명승전(名僧傳)』 등에서 외국, 또는 서쪽에서 온 불상의 계중(髻中), 또는 정상(頂上)에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리들에 대한 신이(神異)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부처님의 형상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여겨진 정계에 사리를 봉안하는 것은 부처님과 불신(佛身)을 동일시하고, 또 그 자체임을 표방함과 동시에 불상에 신성과 존엄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의 불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자연스럽게 봉안되었을 것이다. 불교가 지역의 특성을 수용하며 발전하고 특히 밀교가 흥행함에 따라 진신사리를 대신할 법신사리(法身舍利) 사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나라 규기(窺基, 632-682)가 찬술한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贊)』에서는 ‘불상을 조성하여 그 상안에 법신사리를 봉안하여 기록하였다’는 내용이 나타나며, 더불어 705년에 보사유(寶思惟)가 한역한 『불설욕상공덕경(佛說浴像功德經)』에서도 법신사리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멸도한 후에 두 가지 사리(舍利)가 있을 것이니, 첫째는 법신(法身)이며, 둘째는 화신(化身)이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사리에 공양하거나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되 보리쌀의 크기와 같게 하거나, 탑을 조성하되 암라의 열매와 같게 하거나, 표찰은 바늘 같고, 덮개는 부평과 같게 하거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되 겨자씨 크기만 한 것을 그 속에 안치할지라도 얻는 공덕은 내가 세상에 있을 때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다.[1]『불설욕상공덕경(佛說浴像功德經)』 1권(ABC, K0284 v11, p.635b07-b12) “我滅度後 有二種舍利 一者法身 二者化身 若善男子善女人等 供養舍利 造佛形像如大麥等 造塔如菴羅果 表剎如針 蓋如浮萍 持佛舍利如芥子大安置其中 所得功德 如我在世等無差別”
이와 같이 석가모니부처님을 대신하는 사리는 법사리까지 확대되면서 새로운 성물(聖物)로써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각 지역과 나라마다 특색있는 불교 의식의 성행과 장엄구의 조성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하게 변화되지만 신사리(身舍利)와 법사리(法舍利)는 불상 장엄의 주된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형식의 초기 불상으로는 바미안 석불을 들 수 있다.
이 석불은 2001년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이후 동대불의 수습 작업 중 5-6세기 문자로 쓰인 『연기경(緣起經)』의 편(片)이 발견되었다. 『연기경』 편은 화문과 연주문으로 장식된 금구 경통(經筒) 안에 포(布)에 싸여져 있었으며, 근처에서 백색, 황색, 청색의 포로 싸여 있는 니옥(泥玉) 3개, 보리수 잎사귀로 추정되는 나뭇잎 조각, 그리고 토제인장(土製印章) 1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불상 안에서 니옥으로 대체된 신골, 즉 신사리와 함께 법사리인 연기법송이 함께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법신사리 사상은 그 범위를 넓혀 불신(佛身)을 대신할 수 있는 상징적 물목(物目)들로 확대되었고 물목들 또한 종류가 다양해진다. 그로 인해 정상 육계(肉髻)에 봉안하던 것이 목구멍, 가슴속, 배꼽구멍, 더 나아가 공간이 넓은 동체(胴體) 내부에 물목들을 봉안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밀교의 사상이 결합하고 중국의 오장설(五臟說)까지 유입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도교의 영향을 받는 중국과 달리 복장물목들은 불(佛)의 종자(種子)로서 불상의 내부에 안치하는 현행 복장의식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불복장의궤는 점안의식(點眼儀式)과 결합하여 변화하고 정교한 수행의 의궤로 자리하게 된다. 이 결과는 세계불교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불교의례에서 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불복장의궤는 한국불교의 고유성을 지닌 의례로서 불교문화로서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고 하겠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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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1 『불설욕상공덕경(佛說浴像功德經)』 1권(ABC, K0284 v11, p.635b07-b12) “我滅度後 有二種舍利 一者法身 二者化身 若善男子善女人等 供養舍利 造佛形像如大麥等 造塔如菴羅果 表剎如針 蓋如浮萍 持佛舍利如芥子大安置其中 所得功德 如我在世等無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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