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의식(腹藏儀式) 곧 불복장(佛腹藏)의 기원은 경전상 불상신앙과 사리신앙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불상신앙의 유래는 여러 경전에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경전으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을 들 수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기수급고독원에서 설법하고 계시다가 석제환인의 청으로 도리천에 올라가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하였다고 한다. 그 연유로 지상에서 부처님을 뵐 수 없게 되자 우전왕과 파사익왕은 병이 들게 되었다. 그 때문에 대신들은 지혜를 내어 부처님과 닮은 불상을 조성하여 예배드릴 것을 권한다. 두 왕은 크게 기뻐하고 우전왕은 전단 나무로, 파사익왕은 자마금으로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부처님 재세 시에 이미 불상이 조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승경전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보편적인 불상 기원설이다.
또한 『조상경(造像經)』 속의 『대장일람경(大藏一覽經)』 「조상품(造像品)」 15칙에서도 조상의 연유를 찾을 수 있다. 15칙의 내용 중 조상의 시초로, 불상의 기원을 불타 재세 시에 우전왕이 그를 흠모하여 불상을 조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근거로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의 내용을 들고 있다.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도리천 위에 올라가신 지 오래되었을 때 우전왕은 부처님에 대한 연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황금을 주조하여 불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내려오신다는 소식을 듣자, 코끼리에다 불상을 싣고 세존을 우러르기를 마치 살아 있는 부처님을 대하듯 했다. 이내 멀리서 부처님의 발이 허공을 걸으시면서 쌍련화를 딛고 대광명을 놓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 불상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대는 내세에 크게 불사를 지으리라. 내가 멸도한 후에 나의 모든 제자들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만약 어떤 중생이 형상을 조성해서 건립하고 갖가지로 공양하면, 이 사람은 후세에 반드시 염불청정삼매(念佛淸淨三昧)를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제자들에게 널리 알려라. 내가 멸도한 후에 부처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부처의 자취를 그려서 남들로 하여금 이것들을 보고 환희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면, 능히 항하사 겁의 나고 죽는 죄를 없앨 수 있느니라’ 하셨다.”[1]『대장일람집』 4권(ABC, K1504 v45, p.463b01)
이러한 내용을 통해 불상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조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다음 불복장의 기원으로 사리신앙을 들 수 있다. 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대신하는 성물(聖物)로써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불교에서 사리는 붓다라는 위대한 성인, 또는 신격화된 인물의 실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일 뿐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붓다의 몸처럼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불교의 탄생지였던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그 유해를 화장하여 남은 사리를 8개의 나라에 나누어 근본 8탑에 봉안하였으며, 이후 아쇼카왕이 다시 근본 8탑의 사리를 팔만사천탑(八萬四千塔) 안에 봉안함으로써 사리신앙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에서는 금옹(金甕)에 사리를 넣어 여덟 나라의 왕에게 분배하였으며, 『아쇼카바다나(Aśokāvadāna)』, 『아육왕전(阿育王傳)』, 『아육왕경(阿育王經)』 등에서는 아쇼카왕이 팔만사천탑을 세울 때에도 3중이나 5중으로 장엄하여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2]이선용(2018), 「한국 불교복장의 구성과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6-32쪽.
사리 자체가 부처님의 진신이기 때문에 장엄하는 봉안에 중점이 있었으며, 정교한 의례는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사리를 봉안조차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가까이 부처님을 모시고 싶은 열망과 신앙심이 부처님 입멸 이후에 불상을 조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리신앙과 신앙심은 밀교가 흥기하며 그 양상이 변화한다. 밀교사상이 발전하고 의궤가 완성되며 부처와 인간이 하나가 되려는 노력은 관상수행으로 발전한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도교에 기반한 오장육부의 신체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국의 불복장의궤는 인도 출신의 자현(慈賢)스님이 번역한 『묘길상평등비밀최상관문대교왕경(妙吉祥平等袐密最上觀門大敎王經)』을 비롯하여 시호(施護)스님의 『불설불모반야바라밀다대명관상의궤』 등과 같은 밀교관상수행의 경전류를 수용한다. 이와 같이 한국불복장의궤는 중국과 일본불교에서 도교적인 신체설을 수용한 것과는 달리 별개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의궤를 구현해 내기 시작한다. 밀교관상수행의 경전을 수용한 한국불교는 동아시아불교에서 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특징적인 불복장의궤가 완성된다. 이것이 불복장의궤가 가지는 경전사적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 집필자 : 불교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대장일람집』 4권(ABC, K1504 v45, p.463b01)
- 주석 2 이선용(2018), 「한국 불교복장의 구성과 특성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6-32쪽.
관련기사
-
복장의식의 정의〈그림 1〉 복장의식(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복장의식(腹藏儀式)은 불복장(佛腹藏), 불복장작법(佛腹藏作法)이라고도 하며 불상, 불화, 불탑 등을 봉안하기 전에 종교적 예배대상으로 상징성을 갖도록 의미를 부여하는 불교의례이다. 이 의식은 『조상경(造像經)』에 바탕을 두고 모든 의례를 설행하는데, 복장의식(腹藏儀式)과 점안의식(點眼儀式)으로 구성된다. 복장의식은 부처님으로 화현할 수 있는 불종자를 몸에 채워 복덕을 구족하는 것이며, 점안의식은 부처님으로 탄생할 수 있는 정신을 불어넣어 지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한낱 형상이... -
복장의식의 성립 배경〈그림 1〉 『불설욕상공덕경』(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복장의식(腹藏儀式)의 성립 배경은 대승불교가 시작되는 1세기 후반 경이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불상(佛像) 조성(造成)이 활발해지면서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보다 구체적인 의식이 요구되었다. 특히 3세기 간다라 불상에서는 정계(頂髻)에 홈을 두어 사리(舍利)를 봉안하고자 했던 흔적들이 발견된다. 실제 『고승전(高僧傳)』, 『집신주삼보감통록(集神州三寶感通錄)』, 『명승전(名僧傳)』 등에서 외국, 또는 서쪽에서 온 불상의 계중(髻中)... -
중국〈그림 1〉중국 송대 목조보살반가상(가나가와현립역사박물관) 중국에서의 복장의 양상은 실제 3-4세기 중국의 불상 정계(頂髻)에서 방형, 또는 원형의 구멍이 발견된 것을 통해 중국에서도 간다라 지방의 사리봉안 방식과 유사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6-7세기경에는 불상 내부에 납입품을 봉안하는 종류와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속고승전(續高僧傳)』(645)에 보면 금동노사나불(金銅盧舍那佛) ‘상신(像身)’, 즉 상의 동체 내부에 금동노사나불을 조성하는 서원과 개인이 시주한 금을 공양물로 넣은 기록이 확인된다. ...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