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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편 사료 개요

『조선사찰사료』 전라남도편은 1911년 당시 전남 지역 사찰의 중건기록, 사찰내력, 비석, 사적, 현판등을 집대성한 자료로서 주요 사찰 29곳과 약 70개의 사료를 모아놓았다. 전남 사찰의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을 지역별로 파악할 수 있어 불교사뿐 아니라 미술사·금석학·건축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집이다.
『조선사찰사료』 <전라남도>편
<전라남도>편은 당시 호남 불교의 중심이었던 주요 대가람들의 창건•중창 기록과 조선시대 사찰 경제, 유교 문인들과의 교루를 보여주는 많은 문헌(사적기, 기문, 관자 등)을 집대성 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화엄사와 송광사 등 호남 대가람들의 중창과정을 날짜와 관련 인물의 이름까지 세세하게 고증함으로써 조선후기 건축 및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해남 대흥사등의 사료에서 발견되는 불량계 관련 문서는 승려와 지역 민초들의 사찰 운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한 신앙, 경제 공동체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숭유억불 정책속에서도 사찰이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예이며, 그 당시 숭유억불의 억압속에서도 불교가 민중신앙으로써 활동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전라남도>편의 많은 사료들중 백양사 쌍계루기 등에 전해지는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 등 최고 지성들의 기문과 시문은, 사찰이 종교적 공간을 넘어 문인들의 학문적 휴식처이자 문화 소통의 중심지였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는 당대 지배층인 유학자들과 승려들의 활발한 교류를 한것으로 문학사적으로도 그 가치가 매우 중요하게 보인다. 흰 양(白羊)의 전설 ‘정토사’(현재 백양사) 정토사(현재 백양사)는 역사적 변천에 따라 이름이 두 차례 바뀌었다. 처음 백암사(백제 무왕33년, 632년)는 여환대사가 창건할 당시, 사찰 뒤편에 하얗게 솟은 백암사(백학봉)의 바위 절벽을보고 백암사라고 하였다가, 1034년(고려 덕종3년)에 중연 선사가 사찰을 크게 중창하면서 정토법문을 널리 펴기 위해 정토사로 개칭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성 이씨의 원찰로 유지되다가, 1574년(조선 선조7년)에 환양선사가 주석하며 영천굴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 법회가 열린지 사흘째 되던날, 하얀 양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7일간의 법회가 끝난 밤, 스님의 꿈에 흰양이 나타나 ‘천인이었으나 죄를 지어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이 소멸되어 다시 천상으로 가게 되었다’며 절을 올렸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암자앞에 흰양이 죽어 있는 것을 본 환양선사가 이때부터 절 이름을 ‘백양사’로 다시 변경하고 현재까지 백양사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백양사의 주요 사료로는 ‘白巖山淨土寺事蹟(백암산정토사사적)’, '白巖山淨土寺雙溪樓記(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 '轉藏經法會堂司榜(전장경법회당사방)' 등이 있다.
백양사 쌍계루와 백학봉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중심지 '송광사'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僧寶寺刹)이자,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중심지로서 <전라도편>에는 ' 대승선종 조계산 수선사중창기(大乘禪宗曹溪山修禪社重創記)', '승평 조계산 송광사사원사적비(昇平曹溪山松廣寺嗣院事蹟碑)', '대승선종 순천군 조계산 송광사중창기(大乘禪宗 順天郡 曹溪山 松廣寺 重刱記)'가 수록되어 있다.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1세 보조국사 지눌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라남도>편에 나오는 사찰
<전라남도>편에 수록되었는 사찰들 중 현존하는 사찰로는 강산사, 개천사, 관음사, 능가사, 대원사, 대흥사, 도갑사, 도선암, 동화사, 만연사, 목우암, 백련사, 불갑사, 불호사(불회사), 쌍계사(하동), 쌍봉사, 선암사, 송광사, 수도암(중흥사), 원효암(원효사), 용천사, 정토사(백양사), 죽림사, 태안사, 표충사, 향림사, 화엄사, 흥국사가 있다. 반면, 능가사의 암자였던 서불암, 만경암과 도림사의 암자인 신덕암, 길상암은 현재 건물은 없어지고 표지석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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