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의 원형(圓形) 주실에는 본존불좌상 주위로 범천·제석천상, 보살상 2구, 삭발한 승려 모습을 한 상 10구, 십일면관음상 1구 등 총 15구가 배치되어 있다. 이 범천·제석천상과 승려 모습의 상들 위쪽에는 총 10개의 반원형 감실이 마련되었다(그림 1). 현재 입구쪽 팔각기둥 옆의 2개를 제외한 8개의 감실 안에 판석 부조 좌상 8구가 모셔져 있다(그림 2). 2개의 감실이 비어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들인이 10구 중 2구를 무단 반출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 1. 석굴암 주실 상부의 감실과 상들 ⓒ허형욱
그림 2. 석굴암배치도 ⓒ『석굴암, 그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2020) 편집
현재 남아있는 8개의 감실 상들은 1구를 제외한 7구가 원형 두광과 신광을 갖춘 보살좌상이다. 주실 입구를 바라볼 때 향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상(제1상)은 바깥쪽을 향해 편안한 자세로 앉아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내려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모습이다(그림 3). 이 물건을 금강저로 추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진 않으며, 상의 정확한 존명도 알 수 없다.
그 옆의 제2상은 정면향으로 오른손은 내렸고 왼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작은 정병을 들고 있다(그림 4). 보관 정면에 화불(化佛) 입상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존명은 관음보살로 추정된다.
제3상은 머리를 삭발하고 왼손에 보주를 든 지장보살이다(그림 5). 몸에 두른 대의(大衣)의 왼쪽 가슴에는 세모꼴로 옷주름이 늘어져 있는데, 이는 대의가 흘러내리지 않게 고리와 끈을 사용해 묶은 구뉴(鉤紐)식 착의법을 나타낸 것이다. 이 상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지장보살상의 예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림 3. 감실 제1상 ⓒ국가유산청 그림 4. 감실 제2상(관음) ⓒ국가유산청 그림 5. 감실 제3상(지장) ⓒ국가유산청
한편, 향좌측의 맨 안쪽인 제4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안상(眼象)이 새겨진 받침대 위에 향우측을 바라보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그림 6). 1개의 구부러진 다리가 달린 작은 협탁(俠卓)에 몸을 기대고 손에 부채를 쥔 이 상은 구마라집이 406년 한역한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유마경)』에 등장하는 유마거사(維摩居士)이다.
본존불좌상 뒷벽에 감입된 원형두광을 중심으로 그 향우측의 첫 번째 감실인 제5상은 향좌측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일부를 펴서 무언가 말하는 모습을 나타냈다(그림 7). 이 상은 맞은편의 유마거사와 짝을 이루어 대담하는 문수보살이다.
『유마경』 중권(中卷)의 제5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에는 재가신자로서 높은 수행의 경지에 오른 유마거사가 병석에 눕자 지혜제일의 문수보살이 그를 문병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있다. 이때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한 토론이 펼쳐졌는데, 문수보살의 발언과 질문에 유마거사가 침묵으로 응수하자 문수보살이 유마의 일묵(一黙)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찬탄하는 내용이 나온다.
유마와 문수의 불이법문 도상은 중국 당 642년경 조성된 돈황 막고굴 제220굴 입구 좌우벽의 그림이나 일본 8세기 초 나라 호류지(法隆寺) 오중탑 동면의 소조상 등에 비슷한 전례가 있다.
그림 6. 감실 제4상(유마거사) ⓒ국가유산청 그림 7. 감실 제5상(문수보살) ⓒ국가유산청
문수보살상의 향우측에 있는 제6상은 정면향으로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 올려 보주와 비슷한 물체를 들고 있다(그림 8). 존명은 미상이다. 그 옆의 제7상은 향우측을 향해 왼무릎을 세워 앉고 왼손으로 턱을 괸 채 오른팔은 내려 뒤쪽을 짚은 자세를 취했다(그림 9). 이 상 역시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 바깥쪽의 제8상은 향좌측을 바라보며 편안한 자세로 앉아 오른손에 경권(經卷)을 쥐고 있다(그림 10). 이 지물은 범천상 앞에 위치한 보살상이 손에 든 지물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보살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문수 또는 보현과 같이 서로 다른 설이 제기된 상태여서 이를 근거로 감실 상의 존명을 단정할 수는 없다.
정리하면, 감실의 총 8구 중 존명이 확실한 상은 향좌측 제2 관음보살, 제3 지장보살, 제4 유마거사, 향우측 제1 문수보살의 4구이며, 나머지 4구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설이 있다.
그림 8. 감실 제6상 ⓒ국가유산청 그림 9. 감실 제7상 ⓒ국가유산청 그림 10. 감실 제8상 ⓒ국가유산청
감실 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
석굴암 감실 상들과 관련해서는 근래에 새로운 견해들이 제기된 바 있다. 먼저 이 상들의 성격을 8세기 이후 중기밀교 도상의 한 종류인 선무외(善無畏) 계통의 팔대보살(八大菩薩) 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설이다. 이 의견에서는 존명을 알 수 없는 나머지 보살 4구를 문수, 미륵, 제개장(除蓋障), 금강수(金剛手)로 간주하고, 현재 결실된 2구는 보현보살과 허공장(虛空藏)보살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따라 원래는 유마거사상과 문수보살상이 입구 양쪽 감실에 배치되었으며 나머지 8구의 보살상도 지금과는 다른 위치에 모셔졌다고 추론하였다.
한편, 10개의 감실 상 가운데 2구는 일제강점기에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8개의 상만 제작되어 설치되었고 나머지 2개 감실에는 석조소탑이 하나씩 넣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가설에서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인 석조천불소탑과 일제강점기에 행방불명된 석조오층석탑이 각각 입구 양쪽의 빈 감실에 들어 있었다고 추정한 후, 두 석탑의 성격을 그 아래에 위치한 범천·제석천상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상의 학설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하여 석굴암 감실에서 함께 생각해볼 부분은 도상적 특징이 가장 명확한 상이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라는 사실이다. 이 상들은 부처와 중생, 성(聖)과 속(俗)이 둘이 아니라 결국 하나임을 설파한 『유마경』의 불이법문 대담에 근거한 것으로, 다양한 대승불교 신앙과 사상을 내포한 석굴암의 성격 규명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편, 인도나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는 주실 상부나 천정 쪽에 연속된 감실을 마련하고 그 안에 다양한 모습의 불보살상 또는 천상(天上)의 천인(天人)상을 표현한 예들이 여럿 있어서 석굴암 감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 석굴사원들은 석굴암과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석굴암 원형 주실의 천정이 전통적으로 천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돔(Dome), 즉 궁륭식(穹窿式)이란 점을 상기하면 위쪽에 마련된 감실 상들이 내포하는 의미와 상징성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집필자 : 허형욱(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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