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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상과 천부상

석굴암 원형 주실 벽에는 보살상 3구와 천부상(天部像) 2구가 있다. 보살상은 본존불상 바로 뒤의 십일면관음보살상과 각각 문수, 보현으로 추정되는 입구 양쪽의 상이고, 천부상은 입구 양쪽의 두 보살상 옆에 있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이다.
본존불상 뒤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
십일면관음상은 본존불상 뒷면에 감추어진 듯 배치되어 있다(그림 1). 다른 부조상들에 비해 고부조이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에는 큼직한 원형 두광(頭光)을 둘렀으며, 세 겹의 연꽃이 겹친 대좌 위에 서 있다. 왼쪽 어깨를 가리는 속옷을 입은 뒤 목걸이와 영락(瓔珞)장식을 걸쳤고 그 위에 두른 천의(天衣)가 늘어져 배와 허벅지를 가로지르고 있다. 왼손은 가슴 높이로 올려 꽃이 꽂힌 정병을 들었으며, 오른손은 내려서 몸에 두른 긴 영락줄의 일부를 살짝 쥐었다. 옷을 입은 방식이 복잡하지만, 조각이 섬세하여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발가락을 꼬고 서 있는 듯한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은 마치 회화작품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림 1. 십일면관음보살상 머리 부분과 전신상 ⓒ오세윤
머리 위에 올려진 11면을 보면(그림 1), 이마 위 가운데 화불(化佛) 입상이 있고, 그 양쪽에 각각 3개씩의 보살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 위쪽으로는 다시 3개의 보살얼굴이, 맨 꼭대기에는 20세기에 보수가 이루어진 1구의 여래좌상이 올려져 있다. 그러나 이 여래좌상 자리에는 본래 부처나 보살의 머리가 배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십일면관음보살은 현세에서 이익을 주고 자비를 베풀어주는 관음의 성격이 확대된 이른바 변화관음(變化觀音)의 한 종류이다. 그 기원은 고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폭풍의 신인 루드라나 이를 계승한 시바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십일면관음 도상과 관련된 경전으로는 『십일면관음신주경(十一面觀音神呪經)』,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 권4의 「십일면관세음신주경(十一面觀世音神呪經)」, 『십일면신주심경』 등 6~7세기에 중국에서 한역된 이른바 초기 밀교 계통의 것들이 있다. 이 경전들에 설명된 11개 얼굴, 왼손에 든 꽃이 꽂힌 정병, 오른손으로 영락(또는 염주)을 쥔다는 묘사는 석굴암 상과 비슷하다. 석굴암에 십일면관음의 도상이 선택되어 본존불상 뒤쪽에 배치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에는 신문왕대(재위 681~692년)의 승려 경흥(憬興)이 와병(臥病) 중일 때 한 비구니가 문병하여 『화엄경』의 선우원병지설(善友原病之說)을 말하고 11가지 춤을 추어 웃게 만들어 병을 낫게 했는데, 이 비구니가 바로 십일면관음의 화신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십일면관음의 역할에 대한 신라인의 인식을 보여주는 일화로서, 석굴암 십일면관음상 성격을 이해하는 데도 참고가 된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로 추정되는 두 구의 보살상
향좌측 상은 왼손에 범협(梵夾) 즉 경전을 쥐고 있고, 향우측 상은 오른손에 잔을 들고 있다(그림 2). 이 상들이 본존불상과 삼존상을 이룬다는 가정 하에, 항마촉지인의 본존불상을 석가모니불로, 이 두 보살상은 그 좌우협시인 문수, 보현보살로 이해하기도 하나, 그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어느 쪽이 문수, 보현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범협을 든 상을 지혜의 상징인 문수로 보고 잔을 든 상을 실천행의 표상으로 해석하여 보현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잔을 든 상을 밀교의 천발문수(千鉢文殊)와 관련지어 문수로 여기기도 한다. 다만, 잔을 든 보살상은 존명 문제와는 별개로 중국 돈황석굴 벽화에도 비슷한 예가 있어서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도상을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2. 경전 든 보살상(문수추정, 향좌)과 잔을 든 보살상(보현추정, 향우) ⓒ국가유산디지털서비스
원형 주실 입구 가까이 양쪽으로 배치된 보살상 2구는 좌우대칭을 이루듯 안쪽을 향해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다. 둘 다 원형 두광과 발밑에 연꽃대좌를 갖추었다. 몸에 두른 영락장식과 옷의 새김은 회화작품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섬세하고 유려하다. 특히 앞으로 전진하는 자세에 따라 한쪽으로 쏠린 천의 자락의 표현이 사실적이어서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천부를 대표하는 범천상과 제석천상
밖에서 주실을 보았을 때 범천상은 입구 안쪽 향좌측에(그림 3), 제석천상은 향우측에 배치되어 있다(그림 4). 앞의 두 보살상과 비슷하게 안쪽을 향해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다. 두 상 모두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두광을 둘렀고, 발밑에는 타원형 대좌를 깔았으며,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올려 불자(拂子)를 쥐고 있다. 그러나 범천상은 몸에 가사(袈裟)같은 옷을 입었고 왼손을 내려 정병(淨甁)을 쥔 반면(그림 3), 제석천상은 소매가 긴 옷을 입고 그 위에 화려한 장신구를 둘렀으며, 배 부근에 댄 왼손바닥 위에는 금강저(金剛杵)를 올려놓아 서로 대조를 이룬다(그림 4).
그림 3. 범천 전신상과 부분상 ⓒ오세윤
그림 4. 제석천 전신상과 부분상 ⓒ오세윤
석굴암 범천, 제석천상의 모습은 『다라니집경』 3권의 반야화상법(般若畵像法)에 수록된 범천, 제석천을 그리는 법과 비슷하다. 이에 따르면, 범천은 몸에 가사를 입고 불자와 조관[정병]을 잡고 있으며, 제석천은 불자와 발절라[금강저]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이 상들의 광배 이름은 파기광(簸箕光)이고, 발밑의 타원형 대좌는 구유(氍毹)이며, 하체에 입은 옷은 조하군(朝霞裙)이라는 것이다. ‘파기’는 곡식을 체질할 때 쓰는 농기구인 ‘키’를 뜻하고, 대좌인 ‘구유’는 양탄자 즉 털로 짠 모직물이며, ‘조하군’은 순백색 비단으로 짠 치마를 가리킨다. 석굴암 범천, 제석천상이 이 경전 내용을 근거로 제작되었는지, 아니면 참고한 도상이 이 경전을 바탕으로 조성되어서 양자가 우연히 일치한 것인지 그 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다. 범천과 제석천은 고대 인도 신화에서 비롯된 신들이다. 범천은 바라문교에서 수행자의 성격을 지니면서 세계를 만든 창조주로, 제석천은 무사적 기질을 가진 신들의 제왕으로서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속성을 지닌다. 두 신은 불교에 편입된 후, 경전에서는 대개 한 쌍을 이루어 부처님에게 가르침을 받거나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공간적으로는 불교의 수직적 세계관인 삼계(三界)에서 범천은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에, 제석천은 그보다 낮은 욕계(欲界)의 수미산 정상인 도리천(忉利天)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신은 사천왕천보다 높은 곳에 있긴 하나, 불·보살보다는 계위가 낮은 천부에 속한다. 석굴암에서는 이 상들이 어떤 이유로 사천왕상과 함께 통로에 배치되지 않고 본존불상이 모셔진 원형 주실, 즉 성소(聖所)에 들어와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와 같은 배치상의 특징과 그 사상적·신앙적 근거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다른 해석이 제기된 바 있는데, 이 두 상의 역할과 의미는 본존불상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집필자 : 허형욱(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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