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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전, 경판을 봉안하다

송광사 화엄전의 경판 ⓒ송광사성보박물관
송광사의 화엄도량 조성
송광사 남쪽 진남문(鎭南門)을 나가면 흘러가는 냇물을 만나게 된다. 이 냇물을 건너면 산 아래 자리한 전각들을 볼 수 있다. 냇물을 건너 화장루(華藏樓)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화엄전(華嚴殿)을 중심으로 불조전(佛祖殿), 성산각(星山閣)이 양옆으로 위치하고, 동서 가장자리에 명성각(明星閣)과 월조헌(月照軒)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전 송광사의 모습 ⓒ송광사성보박물관
이렇게 사찰의 중심 경내에서 떨어진 곳에 별도의 전각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17세기 초 송광사는 전란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중창을 진행하였으며,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스님의 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과 스님의 제자들이 중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조계산송광사사고』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1633년 성현(性玄) 등 두 스님이 화엄불조전을 건립하고 대장경[1]대장경은 120권 『대방광불화엄경소』를 말한다.을 새겼으며, 월조각을 세웠다. 1684년에는 득오상인(得悟上人)이 불조전의 석상을 만들고, 전각을 세웠는데 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라 기록되어 있다. 1689년에는 우계 준익(牛溪雋益) 스님께서 명성각과 화장루를 세웠고[2]도서출판 송광사, 2024, 『曹溪山松廣寺史庫』, p.129-130(;建物部, 第 4章 初創 重建 重修記 文類, 第 32節 華嚴佛祖殿石築爐殿重創記)., 1770년에는 무등산 안심사에서 조성된 화엄경변상도를 송광사 대화엄전 불단 위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18세기에는 여러 차례 화엄대회가 열렸다. 송광사는 17세기 사찰을 중창하는 과정에서 화엄사상의 유행에 따라 화엄전을 중심으로 화엄도량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송광사의 화엄전 ⓒ송광사성보박물관
화엄도량의 중심 화엄전
1631년 작성된 법성료 중창 상량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3]도서출판 송광사, 2024, 『曹溪山松廣寺史庫』, p.129-130(建物部, (;建物部, 第 4章 初創 重建 重修記 文類, 第 32節 華嚴佛祖殿石築爐殿重創記).
“...무릇 일에는 모두 때를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이에 중창할 때가 되었으니 그 노력과 공력을 이루리라. ... 그 뜻이 가상하기에 날을 점지하여 상량하노라. 이르되 아랑위 포량동, 극락대 경물 무성하니 수석정 바다와 같이 맑아 유객들 손을 잡아 이끄네. 아랑위 포량남, 아침저녁으로 분향하며 공부하는 스님들 화엄불조전에 모신 부처님 법좌에 모여 불경을 외우네. 아랑위 포량서, 우화각 침계루 마주 서있고 극락인 고향 가는 길 낮지 않으니 수많은 풍경에 사람들 걸음을 멈추게 하네...”
송광사의 화엄전은 ‘화엄불조전’, ‘화엄법당’으로 불리며, 스님들이 불경을 외우며 공부하던 곳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9칸으로, 2칸은 법당, 이를 둘러싼 7칸은 경판고(經板庫)로 사용되었다. 송광사에는 17세기 이전의 경판도 존재하기에 화엄전 역시 17세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전 내부 법당에는 비로나자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상의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고, 국보 314호의 화엄경변상도를 중심으로 청량국사진영과 화엄신중탱화가 양쪽 벽에 봉안되어 있다.[4]현재는 모두 성보박물관에 옮겨져 보관중이며, 사진본이 자리하고 있다.
송광사 화엄전 법당 ⓒ송광사성보박물관
화엄전, 경판을 새기고, 보관하다
화엄전 내부에는 『대방광불화엄경소』 2,300여 판을 포함하여 많은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송(宋) 정원(淨源, 1011~1088)이 당(唐) 징관(澄觀, 738~839)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에 『화엄경』 경문을 첨가하여 편집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들어와 조선시대에 판각되어 읽혀진 책이다. 1905년 새겨진 화엄전 현판에는 당시 화엄전에 안치한 34종의 경판 목록이 새겨져 있다. 『화엄경소』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금강경’, ‘법화경’, ‘능엄경’, ‘미타경’, ‘지장경’ 등의 경전과 송광사에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했던 ‘중례문’, ‘지반문’, 송광사에 머물렀던 승려들의 문집이 목판으로 남아 있음 현판을 통해 알 수 있다. 경판을 보관하는 화엄전은 좌우 측면과 뒷면에 큰 창이 있고, 뒷면 좌우 2칸은 위아래에 창을 내고 아래쪽 창은 크게 만들어 공기가 순환되도록 하였다. 동쪽 측면 아래에는 나무떡살을 걸어두었는데 거북 5마리가 줄지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5]송광사, 2021, 화엄전 영역, 월간 송광사, 12월호, p.23. 화엄전과 불조전은 임진왜란 이후 발생한 전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경내에서 떨어진 물이 흐르는 곳 가까이에 통풍이 잘 되도록 전각을 세우고, 거북을 새겨 놓은 것은 법보인 경판을 잘 보존하기 위함일 것이다.
화엄전은 송광사의 귀중한 보물을 보관했던 창고이며, 경판을 새기고 인쇄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담겨진 곳이다. 현재 화엄전은 수리중에 있으며, 경판은 송광사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화엄전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본다.
· 집필자 : 김은진(기록문화팀)
관련주석
  • 주석 1 대장경은 120권 『대방광불화엄경소』를 말한다.
  • 주석 2 도서출판 송광사, 2024, 『曹溪山松廣寺史庫』, p.129-130(;建物部, 第 4章 初創 重建 重修記 文類, 第 32節 華嚴佛祖殿石築爐殿重創記).
  • 주석 3 도서출판 송광사, 2024, 『曹溪山松廣寺史庫』, p.129-130(建物部, (;建物部, 第 4章 初創 重建 重修記 文類, 第 32節 華嚴佛祖殿石築爐殿重創記).
  • 주석 4 현재는 모두 성보박물관에 옮겨져 보관중이며, 사진본이 자리하고 있다.
  • 주석 5 송광사, 2021, 화엄전 영역, 월간 송광사, 12월호, p.23.

관련자료

  • 잡지 2021-12-01 | 월간송광사 | 2021년 12월호 | 대한불교조계종 승보종찰조계총림 송광사 | pp.20-23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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