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송광사사고 상권-건물부 ⓒ송광사성보박물관
우리나라의 유무형 문화유산(문화재)에 대한 지정은 1961년 문화재관리국의 발족과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공식화되었다. 이보다 앞서 문화재 관련 법령은 일제강점기 때인 조선총독부에 의해 시행되었다. 1916년 일제는 ‘고적(古蹟) 유물(遺物) 보존규칙’과 1933년에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제정하여 한반도 전역에 걸친 고적 조사와 문화재 보존정비 사업을 시행하였다. 물론 이는 식민지 지배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고적 발굴조사로 수집된 유물들을 일본으로 몰래 유출해 가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가 1911년 사찰령을 시행한 이후 송광사는 1913년에 ‘송광사본말사법’의 인가를 받았다. 당시 발간된 <조계산송광사본말사법>에는 신라말 혜린(慧璘) 스님의 송광사 창건 사실과 고려 보조국사를 시작으로 나옹 혜근, 태고 보우, 부휴 선수 등으로 이어지는 법맥과 사찰의 연혁 등이 법령에 따라 짧게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송광사는 이듬해인 1914년에 <대승선종조계산송광사연혁(大乘禪宗曹溪山松廣寺沿革)>을 비롯하여 사찰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사료를 자체적으로 편찬하기 시작했다.
사찰의 기록을 모으다
사지(寺誌)는 일반적으로 사찰의 창건, 중창, 연혁, 인물 등의 기록과 유물 목록이나 재산 문서 등을 모아 일정한 체계 속에 기록한 문헌을 말한다. 사지(寺志), 사적(事蹟), 사중기(寺中記) 등으로 쓰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편찬되기 시작한 사지는 1635년 <금산사사적>을 비롯하여 20여 종이 전해지고 있다. 근대에 편찬된 사지는 1912년 <통도사사적>을 비롯한 17종이 있다. 대부분 분량이 짧고 간략한 소책자 형태로 편찬되었다. 송광사에서 편찬한 사지는 여느 사지와 다르다. 책의 분량과 형태 면에서 가장 방대하고, 구성과 내용 면에서도 체계적이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1977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조계산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는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이다. 규장각 소장본은 상중하 3책으로, 송광사 소장본 중 건물부, 인물부, 잡부에 해당하는 3권만 1939년에 등사(謄寫)한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조선도서 정리 작업을 진행할 당시 자료 수집 과정에서 소장자의 거부로 얻지 못한 서적들을 빌려서 베낀 ‘등사본’ 자료를 참사관실(參事官室) 등에서 만들었다. 이때 정리된 서적들이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규장각에 소장되었는데, 규장각 소장의 <조계산송광사사고>는 그러한 일련의 자료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송광사 소장본이 원본(original)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왼쪽부터 <송광사사료집성>, <송광사주지계보>, <조계산송광사사고> 건물부‧인물부‧잡부‧산림부 4책.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 ⓒ동국대 불교학술원
근대 송광사, 역사와 문화유산을 기록하다
송광사 소장의 필사본 <조계산송광사사고>는 건물부(상권), 인물부(중권), 잡부(하권), 산림부의 4편 4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표지가 6침안(針眼)의 황색 비단 장정으로 되어 있다. 일반 고서보다 큰 세로 47㎝, 가로 29㎝ 정도 크기이며, 전체가 6백여 장의 분량이다. 실제로 이 책을 보면 마치 조선시대 실록이나 의궤를 보는 듯하다.
1928년, 1929년, 1934년, 1931년에 각각 편찬된 책말미에는 ‘동고록(同苦錄)’이라 하여 힘든 과정을 함께 겪으며 편찬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교열(校閱)에 해은 재선(海隱裁善, 1889~1955) 스님, 서사(書寫)에 용은 완섭(龍隱完燮, 1899~1976) 스님 그리고 편집에 기산 석진(綺山錫珍, 1892~1968) 스님이 편찬의 전 과정을 맡았다. 입적 전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 스님도 건물부와 인물부 교열에, 그리고 당시 주지였던 율암 찬의(栗庵贊儀), 설월 용섭(雪月龍燮) 스님 등이 고문과 외호(外護)에 동참했다. 특히 송광사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한 금명 보정 스님과 기산 석진 스님의 역할이 지대하다.
이밖에 사지 자료를 증보한 <송광사주지계보(松廣寺住持系譜)>와 <송광사사료집성(松廣寺史料集成)>이 1932년과 1943년에 각각 편찬되었다. 근래 주지 명단까지 이어서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송광사주지계보>는 안타깝게도 제외됐지만, <조계산송광사사고> 4책과 <송광사사료집성> 1책은 2014년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책들은 고려시대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송광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집대성한 근대 기록물로서 사료적 가치는 보물 못지않다. 당시 송광사 사료를 ‘사지’가 아니라 역대 실록을 보관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했던 서고를 뜻하는 ‘사고’로 명명한 것도 송광사의 전통과 유산을 지켜내려는 스님들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2024년 10월 4일에 발행한 <조계산송광사사고>와 색인집 ⓒ송광사성보박물관
한국의 불교사, 미술사, 건축사, 사원경제사, 문화사 연구와 한국의 기록문화유산으로 더없이 귀중한 사료임에도 일부 학자들에게 밖에 알려지지 않았던 송광사 소장의 <조계산송광사사고>가 2024년 10월에 영인 발간되어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이번 발간서는 건물부‧인물부‧잡부‧산림부‧주지계보‧사료집성을 모두 1책으로 엮었으며, 원본 이미지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된 원문을 모두 탈초해 수록했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인물‧사찰‧건물 등의 색인집을 별도로 발간하였다. 이번 작업은 2024년 5월에 입적하신 방장 현봉(玄鋒) 스님의 오랜 원력과 1995년에 성보박물관장으로 부임해 송광사를 거쳐 간 역대 고승들의 연대기를 일일이 찾고 송광사 곳곳에 숨어있던 수많은 문화유산을 조사‧정리 작업하며 쌓아온 고경(古鏡) 스님의 노력과 헌신이 담긴 결과물이다. ‘수선(修禪)’의 도량으로 ‘옛 거울’처럼 우리가 사표(師表)로 삼아야 할 스님들이 이어져 온 승보종찰 송광사의 역사는 지금도 그렇게 기록되고 있다.
· 집필자 : 서수정(기록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