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에 현전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고서(古書)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간행한 고려 교장(敎藏) 판본이다.[1]고려 제11대 왕인 문종(文宗, 1047~1082 재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에서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초조대장경의 판각이 완성되어 가던 무렵인 1073년(문종 27) 19세 때에 동아시아 학승들의 장소(章疏: 대장경의 주석서 및 선종(禪宗)을 제외한 제종파의 찬술서)를 모두 모으고자 하는 상소를 올렸다. 아버지 문종과 조정의 반대가 있었으나, 문종이 승하한 뒤 1085년(선종 2)에 다시 상소를 올리고 중국 송나라로 건너갔다. 의천은 송에 체류하는 13개월 동안 50여 명의 고승들과 교류해 3천 권이 넘는 장소를 수집해 1086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도 국내뿐만 아니라 거란과 일본에까지 서신을 통해 장소를 수집하였다. 그는 그때까지 모은 1,010부 4천여 권이 넘는 장소를 1090년에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는 목록으로 편찬하고, 수집한 장소를 흥왕사(興王寺)에서 다시 교감해서 간행하기 시작했다. 이 교장(敎藏) 사업은 동아시아 학승들이 찬술한 불교 교학서를 집대성하여 간행, 유포하고자 한 유례가 없었던 최초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국가적인 간행 사업도 의천이 1101년(숙종 6) 병으로 갑작스레 입적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조선시대 세조가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고려 교장 판을 다시 중수(重修)하거나 조조(雕造)하였다. 이후 인경한 교장 판본이 송광사에 다수 전래하고 있다. 근래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교장 판본은 바로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이다. 『대반열반경소』는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한역한 『대반열반경』에 대한 당나라 승려 법보(法寶)가 주석한 책이다.
송광사 소장의 『대반열반경소』는 권차가 권9와 권10이 묶인 1책으로, 1099년(숙종 4) 흥왕사(興王寺)에서 간행되었다. 1090년(선종 7)에 의천이 편찬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대반열반경소’가 2권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당시에도 권9와 권10 2권만이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책은 장정과 인쇄된 종이로 보아 조선 세조 당시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인경(印經)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유일하게 확인되는 이 책은 송광사에 언제부터 전래되었을까? 일제강점기에 이 책을 송광사에서 최초로 발견하고 쓴 신문 기사가 있어 주목된다.
1922년 12월 9일과 10일 양일간 <매일신보>에 ‘珍奇한 高麗板 經疏의 發見’이란 제목으로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장이자 뒤에 경성제대 교수가 된 오다 쇼고(小田省吾, 1871~1953)가 송광사에서 『대반열반경소』를 발견한 기사가 실려있다. 이 기사에는 일본 동대사(東大寺)에 소장된 고려판 경소(經疏)인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를 쵸쿠료우 시마키(妻木直良)가 1911년 4월 일본 고고학잡지에 소개한 내용과 대각국사 의천의 행적과 교장 간행 등을 소개하고 있다.
<매일신보> 1922년 12월 9일자
<매일신보> 1922년 2월 10일자
오다 쇼고는 기사 말미에 자신이 송광사에서 발견한 『대반열반경소』 1책으로 인해 이러한 교장 판본이 한반도 내 현존한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진기한 자료들이 더 발견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했다. 송광사 기산 석진(綺山錫珍, 1892~1968) 스님도 당시 상황을 『조계산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 「잡부(雜部)」에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22년 7월 총독부 사무관 오다 쇼고가 송광사를 방문해서 이 책을 발견하고 서울로 가지고 가서 각 신문잡지에 발견 전말을 소개하였다. 총독부 고적조사과에서 동경제대 조교수인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에게 연구를 촉탁(囑託)하였고, 『대반열반경소』가 북본[담무참이 번역한 40권] 열반경의 주석서로,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현존 유일본임을 밝혔다. 고적조사과에서 유리판[玻璃版]으로 100부를 인출하였고, 송광사에 인출본 2책을 기증하였다. 책 원본은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보존하다가, 1925년 가을에 송광사에 반환하였다. 기산 석진 스님은 이 일을 계기로 1924년부터 송광사에 소장된 전적을 조사하였고, 『대반열반경소』와 같은 시기에 인출된 『묘법연화경찬술』 외 2책과 묘련사본의 책을 찾았다.
大乘阿毗達磨雜集論疏 卷第十三之十四 大安九年癸酉歲 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
妙法蓮華經纘述 卷一之二 壽昌元年乙亥 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
大般涅槃經疏 卷第九[2]‘九’ 다음에 ‘之’가 생략되어 있다.十 壽昌五年己卯歲 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 (小田氏發見者)
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同 上
金光明經文句 卷下 元貞二年丙寅[3]원정 2년은 1296년이므로, 당시 ‘丙申’(1296)을 ‘丙寅’(1266)으로 잘못 기록하였다.歲 高麗國濟州妙蓮社奉宣重彫
이상 1934년 『조계산송광사사고』에 기록된 5종의 교장 판본 중 『금광명경문구』는 현재 소재를 알 수 없으며, 대신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가 송광사에 현존하고 있다. 다행히 그때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순천 송광사장 고려판 천순판 불전(順天松廣寺藏(高麗板天順板)佛典)』이다. 이 책은 조선고적연구회가 송광사에 당시까지 현존했던 교장 판본을 조사한 서지 기록과 1938년 6월에 촬영한 사진 자료를 첨부한 일종의 보고서로 추정된다. 이 책에 기록된 전체 17종 19책의 교장 판본 중에서 현재 송광사에서 확인되는 책은 5종 5책뿐이다. 나머지 12종 14책은 현재 그 소재를 알 수 없으며, 송광사 구장본(舊藏本)으로 칭하고 있다. 송광사 구장본은 모두 희귀 판본으로 서지학과 불교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순천 송광사장 고려판 천순판 불전』 내 목차 ⓒ한국학중앙연구원
1934년 『대반열반경소』 보물 지정 통지서 ⓒ국립중앙박물관
1922년에 발견된 『대반열반경소』부터 『금강반야경소개현초』 등의 5책은 지금도 송광사에 현존하고 있으며,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책들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9월에 전라남도 내 보물 9점을 지정할 당시 송광사에서는 『대반열반경소』가 첫 보물로 지정받았다. 이후 1939년 10월에 97건이 새로 지정될 당시 나머지 4책도 보물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교장 판본은 전적 중에서 일찍이 보물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1930년대 조선고적연구회의 조사와 촬영 이후에 송광사에서 유실된 12종 14책의 행방도 우리가 앞으로 관심을 두고 찾아야만 할 것이다.
· 집필자 : 서수정(기록문화팀)
관련주석
- 주석 1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文宗, 1047~1082 재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에서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초조대장경의 판각이 완성되어 가던 무렵인 1073년(문종 27) 19세 때에 동아시아 학승들의 장소(章疏: 대장경의 주석서 및 선종(禪宗)을 제외한 제종파의 찬술서)를 모두 모으고자 하는 상소를 올렸다. 아버지 문종과 조정의 반대가 있었으나, 문종이 승하한 뒤 1085년(선종 2)에 다시 상소를 올리고 중국 송나라로 건너갔다. 의천은 송에 체류하는 13개월 동안 50여 명의 고승들과 교류해 3천 권이 넘는 장소를 수집해 1086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도 국내뿐만 아니라 거란과 일본에까지 서신을 통해 장소를 수집하였다. 그는 그때까지 모은 1,010부 4천여 권이 넘는 장소를 1090년에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는 목록으로 편찬하고, 수집한 장소를 흥왕사(興王寺)에서 다시 교감해서 간행하기 시작했다. 이 교장(敎藏) 사업은 동아시아 학승들이 찬술한 불교 교학서를 집대성하여 간행, 유포하고자 한 유례가 없었던 최초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국가적인 간행 사업도 의천이 1101년(숙종 6) 병으로 갑작스레 입적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조선시대 세조가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고려 교장 판을 다시 중수(重修)하거나 조조(雕造)하였다. 이후 인경한 교장 판본이 송광사에 다수 전래하고 있다.
- 주석 2 ‘九’ 다음에 ‘之’가 생략되어 있다.
- 주석 3 원정 2년은 1296년이므로, 당시 ‘丙申’(1296)을 ‘丙寅’(1266)으로 잘못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