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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지정 사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작 시기 조선 1630년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은 서울 관악산 북쪽 중턱의 큰 절벽 바위 면에 얕은 돋을새김으로 새겨졌으며, 몸을 왼쪽으로 약간 튼 모습의 미륵불이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마애불은 1630년(인조 8) 4월에 조성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5m, 세로 6m이다. 마애불은 민머리에 갸름한 얼굴, 뚜렷한 팔자주름까지 표현된 사실적인 이목구비를 보여주며, 이중 원문의 두광과 원형 신광을 갖추고 있다. 통견의를 걸친 옷차림에 두 손은 소매 안에 감춰진 듯 모아져 있으며, 하체는 옷자락이 덮여 다리의 구체적인 형상이 간략화되었다. 전체적으로 몸이 날씬하고 비례가 적절하며, 실제 사람을 모델로 한 듯한 인물 표현이 두드러진다.불상 오른쪽에 있는 명문을 통해 박산회(朴山會) 부부가 시주하여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미륵불은 통견의를 걸친 단순한 옷자락과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얼굴 묘사가 특징이다. 특히 손과 다리의 표현이 간략화되고, 옷자락에 싸여 있는 듯한 형식은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달마대사벽화에서 볼 수 있는 달마대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이처럼 회화적 요소가 반영된 조각 기법은 조선 후기 화보를 통해 불교 도상을 학습한 양식 특징을 보여 준다.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은 1630년이라는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미륵존불(彌勒尊佛)’이라는 명문을 통해 17세기 조선 사회에 미륵신앙이 유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미륵불이 조성된 이유는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 등 혼란했던 현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륵불은 미래에 중생을 구제하러 온다는 신앙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 사람들이 국난 속에서 안정된 세상을 바라며 미륵신앙에 의지해 아픔을 극복하려는 발원을 담고 있다.
· 집필자 : 김경미(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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