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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조선 1663년(현종 4)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1663년(현종 4)에 조성된 마애불로서, 희양산 옥석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애불은 높이 539.6cm, 너비 502.6cm로 자연 암석의 앞면을 다듬어 감실 형태로 만든 후, 얼굴과 상체 부분은 양감이 드러나는 부조 형식으로 제작하고, 하체는 선각에 가까운 형태로 제작되었다. 마애미륵여래좌상은 감실처럼 판 공간이 두신광 형식처럼 장식되어 있으며, 민머리형과 갸름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짧은 목에 삼도(三道)가 약하게 표현되었고, 건장한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의는 다른 곳에 비해 두껍고 입체감을 살렸다. 가슴에는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으며, 옷 주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간략화되었다. 오른발을 위로 올려 앉은 결가부좌의 모습은 길상좌(吉祥坐)로, 노출된 오른발은 불상의 크기와 비교해 작게 표현되었다. 봉암사 마애불을 미륵불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불상의 손 모양이 두 손으로 꽃줄기를 길게 잡고 있는 용화수인(龍華手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원형 중계주를 머리에 올리고, 이마에 뚜렷한 백호(白毫), 갸름한 얼굴, 선명한 이목구비는 명상에 잠긴 듯한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꽃을 들고 있는 수인을 한 불상 조각은 고려시대 작품인 고령 개포리보살입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이처럼 정교하게 꽃줄기를 들고 있는 마애불을 보기 어렵다. 다만 무량사 미륵불 괘불탱(1627년)의 미륵불이 꽃가지를 든 두 손의 모양이 이와 매우 유사하다.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의 제작은 환적 의천(幻寂 義天, 1630~1690)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내용은 그의 제자인 풍계 명찰(楓溪 明察, 1640~1708)의 문집인 『풍계집(楓溪集)』에 기록된 「환적당대사행장(幻寂堂大師行狀)」을 통해 확인된다. 문헌에 따르면 환적당은 봉암사에서 60~61세(1662~1663)에 수행하며 마애미륵여래좌상을 조성하고, 환적암(幻寂庵)도 세웠다. 「환적당대사행장(幻寂堂大師行狀)」을 통해 확인되는 1663년이라는 제작 시기와 환적당 의천이 주관한 조성 배경, 발원자 등은 문헌 자료로 남아 있어, 당시 승려들의 활동과 마애불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억불정책으로 인해 마애불 조성이 주춤했던 시기에 승려가 주도하여 조성된 불상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또한 희귀한 미륵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미륵불 신앙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산이며, 마애조각을 회화처럼 장식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마애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집필자 : 김경미(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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