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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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시기 | 대한제국 1906년 |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원효암 법당 동쪽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로,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인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되었다. 원효암은 신라시대 646년(선덕여왕 15)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1905년에 효은선사가 중창한 후 이듬해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삼존불은 각각 원형의 두광을 갖추고 있으며, 광배와 몸 주변의 암벽을 약간 파내어 입체감을 주었다. 또한 회화작품처럼 균일한 음각선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본존 아미타여래상은 높이 1.3m 크기이며, 보살상은 약간 작게 묘사되었다. 본존상과 보살상은 복잡하게 겹쳐진 통견의를 착의하고 있으며,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 장식과 더불어 비례가 좋은 몸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한 옷주름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삼존상은 얼굴 등에 약간 마모되었지만, 전반적으로 상태는 양호하다. 암벽에는 가로와 세로로 약간의 균열이 있지만, 큰 손상 없이 보존되고 있다.
마애불 윗부분에 음각으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깊이 새겨져 있으며, 각 글자의 너비는 약 14cm 정도이다. 우협시보살상의 우측에는 ’세존응화이천구백삼십삼년사월일(世尊應化二千九百三十三年四月日)‘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삼존의 아래에도 여러 발원자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아미타여래는 원형의 두신광을 두르고,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올린 자세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양 협시보살은 두 손을 가슴 위로 모은 채 합장한 자세로 몸을 본존으로 향하여 약간 틀고 있다. 아미타삼존상의 구도와 표현은 불화를 모본으로 한 듯, 상체에 비해 하체가 긴 비례와 본존을 향하고 있는 보살의 배치, 보살의 화려한 보관 등에서 회화적 경향이 돋보인다.
본존은 위로 뾰족하게 솟은 육계에 나발형 머리를 하고 있으며, 통견의 법의가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연화좌까지 덮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1749년 의겸(義謙) 스님이 그린 <개암사 영산회괘불도>의 본존과 같은 형식에서도 보이지만, 아미타불에서 보이는 것은 서울 <봉원사 아미타괘불도>(1901)의 본존과 매우 유사하여 당시 시대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세 분의 불보살상을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하는 형식은 19세기 서울·경기지역에서 유행했던 구도이다.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19세기 이후 서울·경기지역에서 유행하던 삼존을 배치한 괘불도 형식이 지방으로 전파되어 마애불 형식으로 조성된 중요한 유산이다. 이 작품은 마애불 기법의 발전을 보여 주는 예로서, 당시 불화 양식이 서울에서 양산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록 작가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양식의 전파는 작가들 간의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집필자 : 김경미(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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