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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암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작 시기 대한제국 1897년[광무(光武) 1]
관련 유물 망경암 칠성대 중수비
경기도 남한산성 성벽의 서쪽 끝, 영장산 중턱에 위치한 성남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큰 자연 암벽에 네모난 감실을 깊게 파서 고부조로 새긴 마애불이다. 마애불의 전체 높이는 120cm, 폭은 75cm이다. 불상이 새겨진 주변 바위에는 14곳에 네모난 구획을 파서 조성 시기와 시주발원과 관련된 글을 새겨 놓았다. 그 내용에 따르면, 조선 왕실 자손인 이규승(李奎承)이 1897년(광무 1)에 관음상을 새기고 절을 세워 ‘대황제저하만만세(大皇帝陛下萬萬歲)’등 대 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있다. 또한 이 불상과 글씨는 이규승이 대한제국 이전과 이후 두 차례 이상의 시간 차이를 두고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민머리에 둥근 얼굴, 높게 자리한 코, 알아보기 힘든 눈매, 작고 꽉 다문 입, 그리고 어깨에 닿을 듯 큰 귀가 표현되었다. 반면에 신체는 얼굴에 비해 간략하게 묘사되었다. 넓고 둥근 어깨선에 오른손은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 왼손은 가슴까지 올린 자세를 하고 있지만, 손가락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명확한 수인을 확인하기 어렵다. 오른발을 위로 올린 채 결가부좌를 한 모습도 간략화되어 있다. 착의법은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 대의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좁은 소매통으로 저고리처럼 보인다. 얼굴 부분과 두 손을 제외하고 세부가 명확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뚜렷한 형식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망경암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임금이 친히 찾아와서 나라와 백성의 안락과 수복을 기원한 장소이다. 이는 1893년에 이규승이 암벽 앞에 세운 망경암칠성대중수비(望京庵七星臺重修碑)를 통해 확인된다. 중수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 1874년(고종 11)에 건립된 만경암소비(望京庵小碑)에는 조선 왕실의 번영과 수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조선 세종의 아들인 평원대군(平原大君, 1427~1445)과 평원대군의 양자인 제안대군(齊安大君, 1466~1525)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의 자리에 칠성단을 세워 칠성재를 지내면서 칠성대라 불렀다고 한다.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칠성대’라고 불리는 암벽으로 신앙되던 성소에 자리하고 있어서 칠성신앙의 역사적 장소라는 의미가 매우 크다. 또한 망경암에 새긴 글씨는 19세기 말 조선의 사회상을 알려주고 있어 매우 주목된다.
· 집필자 : 김경미(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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