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
| 제작 시기 | 고려 |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좌상은 충주 중심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변에 있다. 남한강은 충주 중심부에서 동-서 방향으로 나누어지는데, 마애불이 위치한 곳은 서쪽 갈래의 강이 시작되는 지점에 해당한다. 이곳은 과거에 덕흥창(德興倉)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덕흥창은 고려시대에 많은 조운선(漕運船)이 배정되어 있던 규모있는 조창(漕倉)으로서, 남-북의 조운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렇게 많은 조운선들이 오가는 강변의 넓게 트인 바위면에 마애불이 새겨진 이유는 조창, 수운 교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마애불은 강에 접한 남동향 암반면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이 있는 암반은 수면에서 10m 정도 상부에 있어, 가까이 지나가는 배들은 이 마애불의 상용(相容)을 볼 수 있다. 마애불은 높이 400㎝ 가량이며, 머리에서 하반신까지 양각선을 활용한 저부조로 새겨져 있다. 광배는 새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좌는 정확한 형상을 알기 어렵지만 하반신 옷자락 사이에 연판문이 있어 앙련의 연화좌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는 넓고 높게 솟아 있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운 형태인데, 특히 콧방울이 넓게 벌어져 있는 모습이 토속적인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통견(通肩)이며, 옷깃이 가슴까지 ‘U’자형으로 내려와 있다. 가슴 아래에 표현된 옷주름은 중앙에서 ‘V’자에 가까운 형태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하반신에는 얇은 대의자락이 하늘거리듯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굴곡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하반신 대의자락은 규칙적이지 않은 모습이며,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애불의 착의 표현에서 특징적인 것은 옷깃, 옷주름의 경계부를 양각선으로 표현한 점이다. 이는 마애불의 형상을 또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기술로 보인다. 이처럼 양각선을 활용하여 세부의 윤곽을 표현한 것은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남원 노적봉 마애여래좌상 등 고려시대 마애불에서 확인된다. 한편 이 상은 손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옷자락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손을 소매 속에 감춘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부분 화불로 조성되었지만, 고려시대에는 단독의 마애조상과 석조여래입상 등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표현이다. 유사한 예로는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등이 있다.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좌상은 얕은 부조로 인해 눈에 띄기 어려운 불상을 잘 드러나도록 양각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고려시대 마애불 제작 방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정방형에 가까운 얼굴 비례, 높고 넓은 육계, 콧방울이 넓은 코의 형태는 충주, 괴산 등 충북지역 마애불의 상호와 비슷한 인상을 띠고 있어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 양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특히 이 마애불은 강변에 입지하고 있어 마애불과 교통로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또는 고려 후기로 추정되고 있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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