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보물 |
|---|---|
| 제작 시기 | 고려 |
| 관련 유물 | 보은 법주사, 쌍사자석등, 석련지, 사천왕석등, 석조희견보살입상, 세존사리탑, 석조, 벽암대사비, 자정국존비, 석옹, 팔상전, 대웅보전, 원통보전, 천왕문, 소조사천왕상, 철솥, 선희궁원당, 궁현당, 능인전, 당간지주, 석탑, 석탑재, 석등, 보은 속리산사실기비, 등 |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은 법주사 입구의 ‘추래암(墜來岩)’이라 불리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법주사는 속리산(俗離山) 서쪽 골짜기 내에 위치하는 천년고찰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륵도량(彌勒道場) 중 하나이다. 법주사는 신라 때 의신조사(義信祖師), 또는 8세기 중엽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한 사찰로 전하며, 사찰 내에는 통일신라~조선에 이르는 많은 성보 유산이 전한다. 마애불이 새겨진 추래암은 법주사 서쪽을 감싸고 있는 수정봉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2개 이상의 바위가 ‘ㄱ’자형으로 포개져 작은 굴을 형성하고 있는데, 바깥으로 노출된 바위 동쪽의 남향면에 마애여래의좌상이 있다. 이와 맞붙은 서쪽 바위 상부의 동향면에는 지장보살좌상이, 굴 내부에 법주사의 창건 연기를 도해(圖解)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부조상이 있다. 바위 주변에는 방형, 원형의 홈과 돌기 등이 있어서 과거에 전각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마애여래의좌상은 높이 792㎝의 바위면에 602㎝ 높이로 새겨져 있다. 상의 두께는 10~20㎝ 내외이며, 전체적으로 돌출된 부분 없이 편평하게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이 상은 우리나라 마애불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이례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우선 연화대좌에 걸터앉은 의좌(倚坐)를 취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수직 방향으로 내려뜨린 발 아래에는 각각 연화족좌(蓮華足座)가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의좌의 자세는 우리나라 마애불뿐만 아니라 불상에서도 드문 사례이다. 도상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불화, 경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륵의 모습과 유사하여, 존명을 미륵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원근감의 표현으로, 지나치게 가는 허리의 표현이나 연화대좌의 후방까지 표현된 점 등 회화적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는 가지런히 정렬된 굵은 나발과 중간계주를 갖춘 육계 등 이국적인 표현이다. 마애불의 이러한 요소들은 고려 전 시기 마애불을 통틀어 거의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은 허리가 지나치게 가늘고 옷주름 등에서 다소 도식화된 경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연화대좌 등에서 보이는 정밀한 세부 묘사, 날카롭게 표현된 상호, 정제된 제작 기법 등에서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마애불 중 유일무이한 의좌 형식의 미륵불이며, 고려시대 법주사의 중흥(重興)을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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