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보물 |
|---|---|
| 제작 시기 | 통일신라 또는 고려 |
| 관련 유물 | 홍성 용봉사, 용봉사 마애불 |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용봉산 정상 북동쪽 계곡 정상부에 있다. 용봉산은 홍성군의 치소였던 홍주성으로부터 북으로 4㎞ 떨어진 곳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덕숭산, 북쪽으로는 수암산과 이어진다. 용봉산의 옛 명칭은 ‘팔봉산(八峯山)’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불교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마애불은 용봉사로부터 약 100m 상부에 있는데, 시선 아래로 홍성의 중심가가 조망되는 위치이다. 한편 마애불과 인접한 용봉사 경내에는 799년의 기년명이 있는 용봉사 마애불을 비롯하여, 석조(石槽), 승탑, 석탑 등 많은 석조유물이 전한다. 마애불은 용봉사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마애불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탄지 내에서 통일신라시대 기와편 등 유물이 확인되고 있어 용봉사와 관련된 별도의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애불은 계곡 정상부에 솟아 있는 높이 5m, 너비 5m가량의 암반면에 조성되어 있다. 좌향은 정남향이며, 마애불을 새긴 암반면이 앞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대좌에서 광배 끝까지의 높이는 413.7㎝이며, 머리에서 상반신까지는 고부조이지만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조각 깊이가 얕아진다. 불상 주변은 연꽃잎 모양으로 다듬어 감(龕)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그 윤곽을 따라 두광과 신광을 가는 선으로 새겼다. 대좌는 별석(別石)을 조성하였는데, 상면에 발을 조각하여 불상 앞에 맞추어 놓았다. 머리는 소발이며, 높은 육계를 갖추었다. 얼굴은 긴 타원형에 가까우며, 눈두덩이가 부은 듯한 가는 눈이 특징이다. 착의법은 대의 한 장으로 신체 전체를 덮은 통견인데, 옷깃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옷주름은 양 다리에서 각각 ‘U’자형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수인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허벅지 옆에 두고, 왼손은 가슴 앞에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수인은 용봉사 마애불과 유사한 형태이다. 한편, 마애불 상부에는 보개(寶蓋)가 올려져 있다. 보개는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전각부에 화문(花文)이 새겨져 있다. 형태로 보아 보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올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전체적으로 신체의 윤곽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였고, 가슴과 어깨 등에 양감이 느껴져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하반신으로 내려갈수록 조각이 얕아지고, 옷주름의 표현에서도 도식화의 경향이 엿보인다. 마애불은 통일신라 후기 이후 지역에 전파된 불상 양식의 변화상을 반영한 통일신라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세장한 형태와 어색한 신체 비례, 평판적인 조각 방식 등 통일신라와는 다른 면이 보인다는 점을 들어 고려 전기에 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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